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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거짓 시대의 외로운 외침) 이미순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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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거짓 시대의 외로운 외침>

 

바룩은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문서를 기록했고,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아나돗의 제사장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파 아나돗(Anathoth)의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아나돗은 베냐민 땅에 있던 네 레위 성읍 중 하나로(수21:17-18), 이곳의 제사장은 솔로몬에 의해 성전에서 축출된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이고, 아비아달의 후손입니다.
아비아달은 다윗 왕 때에 대제사장이었으나 왕위쟁탈전에서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은 것 때문에 솔로몬에 의해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되어 아나돗으로 유배되었습니다(왕상2:26-27).
예레미야는 바로 이곳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활동을 하다가 요시야 왕이 죽은 해인 6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13년(B.C 627)부터 이후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마지막 왕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7세기의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서 안에 예레미야의 생애와 활동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재배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나, 그의 활동은 넷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제1기: 소명 후부터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전사할 때입니다(B.C 627-609년).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시기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어떤 지지를 보냈는지의 여부도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② 제2기: 요시야 왕의 전사 후 여호아하스를 거쳐 여호야김이 재위한 10년(B.C 609-598년).
애굽과 바벨론 제국 사이에서 남유다가 우왕좌왕하던 시기로 여호야김 왕은위기의식이 전혀 없이 왕궁을 치장하고 국고를 고갈하던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대해 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여호야김)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네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22:13-19)

 

③ 제3기: 시드기야 재위기간(주전598-586년). 예레미야의 활동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도구라고 선언했고,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외쳤습니다. 목에 멍에를 매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고(렘27장),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에도 바벨론에 투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고, 시드기야 왕에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④ 제4기: 유다왕국 멸망 이후(주전586년. 렘39-44장)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의총독으로 세운 그달리야(Gedaliah)를 왕족출신 국수주의자 이스마엘이 살해한 사건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애굽으로의 피난을 반대하고 유다 땅에 남을 것을 외쳤지만 강제로 애굽으로 이끌려간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의 활동을 돕고 그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비서 겸 제자 바룩(렘32:12-13,16, 36:4-5,8,10,13-19,26-27,32, 43:3,6, 45:1-2)이 끝까지 예레미야와 그 삶을 같이 했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문서를 기록했고,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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