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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먹으며 불평하는 사람들 정진권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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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먹으며 불평하는 사람들

11:31-35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산, 시내 산을 떠나 구름기둥을 따라 행군을 시작하여 사흘 길을 갔습니다. 디베라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였습니다. 불평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진중에 섞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나온 잡족(雜族)이었습니다(12:38).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진중에 거하며 모세에게 조금씩 불만을 터뜨리면서 백성들을 오염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과거 애굽에서 먹던 파와 마늘과 부추와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고 아우성치게 했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불평하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섞여 사는 잡족들이 문제입니다.(11:4). 믿음의 공동체 속에 들어와 염병처럼 퍼져 나갑니다. 꽃이 만발한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작은 여우입니다.(아가2:15).

 

2.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단의 방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슬쩍 흘려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말씀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을 바꾸어 놓고 의심을 심는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까 하심이라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평을 갖게 합니다. 입을 조심하고 경건하게 하는 것보다, 귀를 조심하고 경건하게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입은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만 귀는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듣느냐?’ 가 중요합니다. 귀로 듣는 것에 따라서 뇌세포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귀로 들려온 말이 뇌에 입력되면 마음에서 지워버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사단의 말을 듣고 나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계속 퍼트리고, 이간시키는 말을 경계하십시오. 부정적인 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단호하게 물리치십시오. 듣고 나면 의심하게 되고, 듣고 나면 병들고, 마음이 돌아가고 눈의 각도가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만나를 먹으며, 불평하는 소리가 높아지자 모세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나님께 토했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이 모든 백성의 모든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나더러 어찌 이들을 품고 가나안 땅까지 가라고 하시나이까, 이 백성이 고기를 달라고 울고 아우성치는데 제가 어디서 고기를 구할 수 있습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이 백성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11:13-14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해답을 주였습니다. 두 자기입니다. 하나는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 칠십 명을 뽑아서 회막(會幕)으로 불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내린 영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백성들을 돌보는 짐을 너와 함께 지게 하겠노라.” 민수기11:16-17 말씀입니다. 여기서 장로와 본처 지도자들의 본분과 사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장로와 교회의 지도자는 모세과 짐을 함께 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역자입니다.

 

4. 또 하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해답은 달 동안 고기 냄새가 질릴 정도로 고기를 먹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일까요? 음식은 일용할 양식을 먹는 만큼 얻은 것이 축복입니다. “너 혼자 실껏 먹고 배가 터져죽으라고 욕하는 소리 들어보셨지요. 옆에 있는 사람은 배가 고파서 쫄쫄 굶고 있는데 혼자 먹고 탐욕스럽게 먹는 친구에게 하던 말입니다.

 

지금 시대는 굶어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 터져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평균 3kg 늘어났다고 합니다. 먹는 것 절제하지 못하면 죽어요. 하나님께서 하루 이틀 닷새 엿새 열흘 스무날 먹을 음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고지 냄새가 질릴 정도로 한 달 동안 먹게 해 주신 것은, 탐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습니다.

 

마늘과 부추와 상추에 싼 고기를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고기가 목구멍에 걸려 급체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잡족(雜族)들이 불평 하는 소리에 동조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탐욕의 무덤에 묻어버렸습니다. 그 땅 이름을 핫다아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디베랴에서 있었던 민수기11장의 말씀입니다.

 

5.  디베랴라고 하면 생각 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먹고 남은 조각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였습니다. 받은 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13입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그 남은 조각 열두 바구니를 어떻게 하셨을까요? 적어도 썩히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먹으려고 가지고 가시기는 아니하였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던 사람들을 먹이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 보내셨을 것입니다.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잠시 피하였다가 제자들에게 떡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루의 양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 하루의 양식을 가지고 쌓아 두고 먹으려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떡은 너희 조상들이 먹도 죽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 떡을 먹은 자는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6:51). “내 살은 참 된 양식이요, 내 피는 팜된 음료수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리라”(6:56).

 

하나님이 내려주신 은혜를 가지고 육신 생활 뿐 만아니라 영적 생활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세 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늘에서 내려 주신 은혜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탐욕이 문제입니다. 자족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기적을 보면서도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불평하였습니다.

 

6.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향할 때에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은혜를 입으면서도 불평하며 걸어 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광야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까칠까칠한 만나를 먹으면서도 감사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차지하고 안식하였습니다. 고기(메추라기)를 상추와 마늘에 싸서 먹으면서도 불평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면서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했을까요? 먹을 것이 없어서 일까요? 입을 것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 하나님의 약속의 대한 꿈과 믿음과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과 광야에서 죽은 사람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비전과 믿음입니다. 미래에 대한 꿈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조그마한 어려움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문제를 당해도 좌절하고 낙심하고 불평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7. 꿈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과 다른 열 지파 사람의 차이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열리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눈이 열립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에 원망이 없어지고, 고독함이 물러갑니다. 마음이 온유해지고 따뜻해집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으며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욕망을 끝까지 채우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하는 생활, 절제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마른 떡 하나 만으로도 자족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만나를 먹고, 하나님께서 바람 결 따라 날라다 주신 메추라기를 죽는 모세의 디베랴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디베랴 사람들처럼 만나로 배를 채우는데 끝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먹고 영생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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