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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 정진권 | 2022-05-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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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그리스도인 되기 엡1:1-7
1.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 있을 때,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써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는 희랍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신전의 제사는 성적 타락의 온상이었습니다. 아데미 신전 외에도 각종 종교가 난무하여 마술과 악령의 소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서를 들러 잠깐 회당에 들려 말씀을 가르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에베소서에 복음을 전한 것은 제3차 여행 때입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성령세례를 베풀고,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 약 2년간 가르쳤습니다. 이 우상의 도시에 복음의 역사가 얼마나 힘 있게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사도행전21장에 보면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우상을 섬기던 수많은 사람들이 부적과 우상의 책을 다 가지고 와 불태웠는데, 그 값이 은 5만 량에 달하였습니다. 은전 하나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요즘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잡는다면 약50억에 달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Demetrius)가 바울일행으로 말미암아 사업에 큰 손해를 입게 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핍박함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니아로 갔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바울을 안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전송하였습니다.(행전20:38).
2.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 전도하다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낙심 중에 있는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는 6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 등 사도바울 신학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1:1과 1:7의 말씀을 집중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에베소서1:1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 이라” 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apostolos)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메시지를 가지고 달려가는 자, 전령(傳令)이란 뜻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나라의 편지를 가지고 가는 특사입니다. 대통령의 편지를 가지고 타국으로 가는 대사와 같습니다.
본래 사도란 예수님의 12제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예루살렘의 반대자들이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비판한 것은 맞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예수님으로부터 사사 받은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도란 자의식이 강했습니다. 3.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자칭 사도라고 부른다고, 비난하였지만,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강력하게 변호하였습니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11:5입니다.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고후11:6입니다. 바울은 사도들에 대한 콤프렉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에 대하여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대적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도 아닌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그런 배척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얼마나 바울을 배척하였는지, “나를 좀 괴롭게 하지 말라. 내 몸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 고 간곡하게 호소하였습니다.(갈6:17). 바울은 사도권을 부정하는 자에게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사도권을 역설하였습니다.
4.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b).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신실한 자들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가 되는 말이 신실함입니다. 신실함(faith-full-ness)이란, 믿음이 가득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이란 믿음이 바닥에 간닥간닥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이 반만 채워지고, 반은 세상의 지식과 경험과 자기 확신으로 채워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신실하고 충만할 때 믿음의 열매가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할 때 그 믿음이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flowing)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끝없이 다른 사람에게 받으려만 하는 믿음이 있고, 받은 것을 흘러 보내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충만한 믿음입니다. 구원을 받기에 급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이 흘러 넘쳐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5.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음행과 쾌락의 도시 한복판에서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온갖 불이익과 핍박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엄격한 사도 바울에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에베소서1:7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첫째, “그리스도 안에” 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엔 크리스토" 라는 단어는 바울서신 전체에 흐르는 주제가 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라는 단어는 바울 서신에 164회나 나오고, 본문 에베소서1장에 12번이나 나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 라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그 판단기준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모이느냐, 재정이 얼마나 되느냐” 묻기 전에 “그 교회가 얼마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인가” 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모든 신령한 복과 신령한 은사와 신령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5. 둘째, “속량” 이란 단어입니다. 속량(贖量)이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은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속량이란 말은 노예를 사고 팔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주인에게 노예의 몸값을 지불한 돈이 속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량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교리를 알 때 구원관이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구원관이 확실하게 서지 아니하면 연약할 때 흔들입니다. 병들었을 때 흔들입니다. 엉뚱한 소리합니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살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속량에 대한 죄 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한 유대교도였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배우고, 배운 대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이런 바울이 다메섹 체험 이후에 유대교와 결별하고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완전히 전향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율법 아래에서 저주받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받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6. 셋째는 “풍성함”이란 단어입니다. 풍성함이란,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채워지고 넘쳐나서 흘러내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는 차고도 넘치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들까지 주신 이가 무엇인들 아끼시겠습니까? 구원받은 것만으로 만족하기 말고, 풍성한 은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10). “더 풍성한 것” 이란, 영적인 것 뿐 만아니라 육적인 부분과 혼적인 부분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는, 강건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원은 통전적(通典的)구원입니다. 영육간의 구원입니다. 질병까지 포함합니다. 물질적인 것 까지 포함합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길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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