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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 정진권 | 2022-05-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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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만들기 엡2:12-22 1. 지난 120여 년 동안 한국교회는 부흥과 축복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은 교회성장이 중단되고, 교회는 바닥을 치면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그 짠 맛을 잃어버리면 길바닥에 버려진 소금처럼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적중되었습니다. 교회의 체질이 약화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 까지도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이러쿵저러쿵 말합니다. 언론을 부정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언론 또한 언론입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기면 더하기 곱하기 하여 눈덩이처럼 대서특필하고 교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립니다. 언론사의 방침에 따라서 얼마든지 확대되고, 조작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기자의 특별한 종교가 선호하기도 무시 되기도합니다. 카톨릭 교회은 아예 언론 대책위원회가 있어서 교회의 발생하면 즉시즉시 해결하여 교회의 비리가 밖에 나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한 사람을 무너뜨리고 죽이는 일은 단 칼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얼마나 힘듭니까? 건물을 무너뜨리는 일은 폭탄하나만 가지면 롯데월드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을 세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동과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2. 교회는 비판적인 말을 잘 경청하면서 철저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성장이라는 말보다는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형교회보다 행복한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십만 명 모이는 한두 개 교회를 세운다고 역사가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농촌교회와 도시교회, 크고 작은 중소교회들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서로 상생의 길을 간다면, 한국 교회가 강건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상생하지 아니하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경쟁보다 협력과 상생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업도 가정도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이 서로 상생하면서 존재할 때, 어떤 세계불황에도 흔들리지 않은 강건한 국가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기업이 문어발식으로 빵가게 아이스크림가게 피자가게 까지 손을 대서, 중소기업, 소상인들의 삶의 터전인 시장까지 다 잡아먹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중에는 대기업도 죽습니다. 대만이 거대한 중국을 상대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중소기업이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 나놓을 만한 대기업 하나 없이 이스라엘이 세계제일의 단단한 경제대국으로 서는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벤처기업과 대학이 협력 속에서 계속 새로운 첨단기술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화목입니다. 3. 왜 한국교회들이 체질이 연약한 교회가 되었을까요? 주춧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주춧돌이 무엇입니까? 사도적 전통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2:20).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이 선포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셨다는 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도들의 증언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승천하셨다는 것을 그대로 믿었고, 주님이 곧 다시 오신다는 재림을 그대로 믿고 기다리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사도권이 무너졌을까요? 화목이 깨어졌습니다. 지역적인 갈등 계급적인 갈등 남녀간의 갈등 이념의 갈등에 의하여 교회가 파벌이 생기면, 그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이 들어와서 무너뜨리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파벌과 분열이 있는 곳입니다. 초대교회가 바울교회와 베드로 분열되어서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와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교회와 에베소교회에 편지할 때 마다 분열하지 말고 하나가 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지금 미국 감리교회(UMC)교회가 GMC(Global Methodist Church)로 두 교단이 되었습니다. 남북전쟁으로 갈라졌다가 1930년 한국감리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미국의 남, 북감리교회와 하나가 되어 연합교회(Unite Methodist Chureh)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미연합 감리교회가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교회와 동성연애를 부정하는 교회로 갈라섰습니다. 미국교회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도 그렇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국회에 “차별금지법”가 있습니다. 교계가 반대하여 갓갓으로 막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흐름도 동성연애를 허락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4. 허약해진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고, 강건한 교회로 만드는 데 있어서 화목(和睦)이란 말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에 화목이 깨어진 결과 교파가 생기고, 화목이 깨진 교회는 사도권의 붕괴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과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신뢰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영화 한편이 나오려면 유명한 배우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이 돈이 많고, 주연 배우만 뛰어나면 좋은 영화가 만들어 지는 게 아닙니다. 조연 배우, 촬영기사나 조명기사, 음악. 무대장치, 화장, 등.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 모든 사역 구성원들이 함께 연합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아니하면 최고의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최고의 부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최고의 작품이 나오기 위하여 서로 돕고,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이 서로 돕고 연합하게 하는 토대가 무엇입니까? 화목입니다. 아시아의 최고의 축구선수 손흥민,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살고 싶어가게 하는 BTS, 수백 억 씩 벌어오는 여자 골프 선수들, 남자 골프는 소용없어요, 우리나라 젊은이들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탁월성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화목에서 나오는 한류의 힘입니다. 모든 분야가 서로 협력하고 하나가 되어 한류의 열풍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나와 출신지역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화목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이제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2:13입니다. 5. 바울시대는 로마사람들과 유대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였습니다. 교회 안에도 유대인과 헬라인의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유대인을 약소민족이라고, 문화가 없는 야만인들이라고 무시하였고,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을 할례 받지 못한 개라고 저주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늘의 천사들이 모이는 곳도 아니고, 성자들이 모이는 곳도 아닙니다. 여전히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고, 다양한 욕구가 분출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의 공기와 똑같습니다. 교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성경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님은 헬라인과 유대인이 함께 살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제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2:19). 한 사람, 한 사람이 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그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천국의 시민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6. 사도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님의 피가 들어가야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저는 사람의 피도 사람을 확실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 * * ).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 아래서 둘이 하나가 된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베드로 라인의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 라인의 이방교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두 촛대를 보십시오. 바울 라인의 교회와 베드로 라인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A.D. 89년에 공교회를 선포하고, 성경 66권을 정경으로 확정하고, 사도권을 확립하였습니다. “십자의 피가 법조문을 된 계명을 폐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과 공의와 양심이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 속량의 토대 위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랑과 용서와 관용의 상징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주셨습니까? 화목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누군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심으로 분열과 갈등의 담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원수 맺게 하는 것들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엡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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