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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으로 용납하기 정진권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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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기

4:1-12

 

1. 인생을 살다보면 상처가 없고,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이것을 빨리 해결하지 아니하면 쓴 뿌리가 되고, 치명적인 2차 상처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서로 만나고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화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용서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용서를 거부하는 즉시, 마귀에게 문 열어 주는 것입니다. 영성이 고갈되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데 있어서 심각한 방해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보다 화해를 우선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화해하지 않고, 제사를 드리면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도 가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5:23-24). 제사를 거부당하면 가인과 같이 됩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과 관계가 차단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화해와 용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줍니다. 첫째는 예배가 상달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기도가 안 되고, 세째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5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2).

 

상처를 치유 받지 않으면 남겨진 감정이 나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이(轉移)되어 나 자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시각과 적대 감정을 심어줍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는 없지만 가문에 흐르는 전통과 부모가 받은 상처가 유전처럼 내려갑니다. 부모가 해결 못한 상처와 분노가 자녀들에게 내려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남편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엄마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아내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3차적 피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차적 3차적으로 상처를 주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쓴 뿌리를 왜 그대로 가지고 계시렵니까? 훌훌 털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화해하지 못하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마귀가 손대지 아니하고서도, 제일 쉽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방법입니다. 마귀의 작전에 말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정치범으로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면회는 6개월에 단 한번 밖에 허락 되지 아니하고, 편지도 한 통 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아내와 딸들은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 정신질환으로 고통당하고, 가정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28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원수들을 벌할 때가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만델라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원수 갚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고, 용서와 화해를 하는 일을 시작 하였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에게 감동되어 오랜 기간 고통 받아온 흑인들의 복수심이 차차로 녹아 내렸습니다. 남아공은 흑인과 백인의 미움과 복수심의 악순환을 끊고, 백인과 흑인이 가장 평등하게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3. 인간의 선한 양심을 파괴하고, 사람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파괴하는 미움과 원한과 복수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면서까지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 피로써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교회 안에서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변두리에 사는 사람과 중심에 사는 사람을 하나로 만들고, 죄인과 의인을 하나로 만들고, 이념과 색깔과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평화를 위하여 함께 걸어가게 만드셨습니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받은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심과 같이 너희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2).

 

마음속에 형제에 대하여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요일4:20).

 

4. 어떻게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요? 화해와 용서는 꼭 해야 하는 명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용서하라는 것은 당위(當爲)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처럼, 서로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12:19).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선악을 심판하시고, 보상하시는 분임을 믿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원수 갚는 일을 내가 직접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손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시계는 느리게 돌아가지만 고장 난 시계는 아닙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선악을 분명하게 갈라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시는데 왜 내가 손에 피를 묻힙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말세의 성도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마태25:31-46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왼쪽에 있는 염소의 무리는 영벌의 세계 지옥에 던져 넣고, 오른쪽에 있는 양들의 무리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5. 예수님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원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기란 정말 힘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그러운 마음을 구해 보십시오.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순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기뻐하십니다. 성령님에게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성되고,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도 40여 년 동안 목회해 오면서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고요, 머리가 빠질 만큼 힘들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어려웠습니다. 용서한다는 것,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 않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용서가 되는 거예요. 내가 살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용서는 성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4:13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6. 사도바울이 서로 사랑함으로서 용납하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편지를 수납하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 간에도 서로 분규하고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일하다보면 의견이 충돌되고 섭섭한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미숙함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한 몸 됨을 강조하였습니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한분이시요, 주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4:5).

 

바울은 교회 안에서 직분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니라”(4:11-12). 성도들이 서로 용납하고 하나 되어야 하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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