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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정진권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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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인간실존에 관하여)

7:18-25

 

1. 키에르케고르(Zieren Kierkeggard)은 인간의 실존의 3단계론을 통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 가지 단계로 심도 있게 잘 성찰한 신학자입니다.

 

1단계는 심미적(審美的, estetic) 실존의 단계입니다. 순전히 육체적이며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양심과 인간의 도리를 져버리고 금수와 같이 사는 삶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며 감각적인 삶의 "무상함"(Meaningless)을 깨닫고 지나온 삶을 재고한다는 것입니다.

 

2단계는 윤리적(倫理的) 실존의 단계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은 감각적인 삶을 포기하고, 윤리적인 실존의 단계로 삶을 승화시켜 갑니다. 감각적인 것들을 멀리하고, 선을 선택하며, 윤리의식을 갖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도덕적으로 철저히 살려고 하면 할수록 "무능력"(Inability)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무능력을 깨달은 순간, 윤리적 행위로써는 의롭게 살 수 없다고 깨닫고 종교적 삶으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3단계는 종교적(宗敎的)실존의 단계입니다. 키에르케골은 종교적 실존의 단계를 두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자력구원의 종교와 타력구원의 종교입니다. 자력구원의 종교인은 신의 뜻을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종교인입니다. 불교, 유교, 이슬람교 및 유대교 까지도 자력구원의 종교입니다.

 

타력 구원의 종교는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내재(內在)되어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절대자의 절대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자력구원(自力救援)의 종교가 아니고, 내 의지와 결단과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의 종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온전한 타력구원의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실존 상황을 가장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지체 속에 숨어있는 죄의 근원을 보았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만, 지체 속에 또 하나의 내가 있어서 악을 행하기를 소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자력구원의 한계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습니다.

 

선을 행할 의지는 있으나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악을 지향해 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며 영적전쟁의 곤고함을 고백하였습니다. 로마서7:24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무력합니다. 사단에게 사로잡힌 인간의 의지는 아무리 죄를 짓지 아니 하려고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속에서도 성령과 악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대사도도 이 문제를 가지고 마지막 까지 고민한 분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할 때 바울은 초기 바울이 아닙니다. 적어도 다메석에서 회심하고, 사도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사역할 때입니다.

 

4. 탕자의 비유 속에서 종교적 단계의 두 차원, 자력구원의 사람과 타력구원의 사람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기득권을 누리는 자력구원 모델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항상 있으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정을 지켜온 모범적인 효자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은혜 없이도 잘 살고 자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력구원의 모델입니다.

 

성경은 큰 아들을 종교적 모델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아버지의 재산을 자지고 먼 나라에 가서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그리스도인이 지향해 나갈 종교적 삶으로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지체 높은 아버지의 아들이 짐승의 아들이 되어 돼지우리에서 사는 절망적인 자아를 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작은 아들은 자기 실존을 통찰하고 가지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즉시 그 절망을 딛고 결단하고 일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내가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의 위치로 돌아가리라! 작정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저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아들보다 먼저 발견하였습니다. 달려가서 아들을 안고 입 맞추고 집으로 들여 옷을 갈아입히고 신을 신기고 반지를 끼워주고,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고 동네 사람을 불러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탕자가 자기의 자리를 회복하고 아들로서 다시 회복된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5.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공의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을 잘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에 밝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주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인생이 죄를 극복하고 영생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큰 아들처럼 아버지의 집에 있지만 아버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에 가쳐 있는 사람보다. 작은 아들은 탕자가 되었지만 깨닫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은혜로 다시 아들의 자격을 회복하는 것이 더 기독교인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죄 짓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죄책감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문제는 죄책감을 내가 이기려고 하고, 자학하고 억압하느냐, 인정하고, 회개고 하나님의 용서에 의존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일반 종교는 도적적인 종교입니다. 윤리의식을 높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만드는데 목적을 둡니다. 이런 종교가 바로 자력구원의 종교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한탄하게 하고, 심판의 두려움을 조장하며 도덕과 윤리의 매카니즘에 빠지게 합니다. 바리새인이 되든지, 죄를 합법화하여 죄의식을 갖지 않게 합니다. 죄 의식 없는 종교인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보다 더 타락하게 합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보다 법을 알면 더 큰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6. 죄 의식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죄 의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죄책감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오는 양심의 발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성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죄 의식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은 두 단계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죄가 어디에서 왔는지, 죄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바로 바울이 유대인신앙 구약신앙에 있을 때입니다. 다메석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죄책감을 피할 수 없으며,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고 심한 내적 갈등과 혹독한 시련을 통과할 때도 있고, 불안과 괴로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죄의식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부터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는 것은 모세에게 나타나신 엄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나타나신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정의 실천보다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속성이 뿌리 뽑힌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이롭다고 인정받은 것뿐입니다.(義認. 稱義).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13). ”죄가 많는 곳에 은혜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20). 은혜 받으려고 죄를 많이 지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죄의식에 사로 잡혀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마서 8:2의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In Christ),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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