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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기 위하여 1 --(제사법) 정진권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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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하기 위하여-- (제사법)

1:1-9

 

1. 레위기가 왜 성경에 들어 있나? 저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레위기를 읽으면 이런 것이 무슨 경전인가? 이런 성경이 어떻게 300년 동안이나 세계 베스트 셀라 1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레위기를 가지고 설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특별히 어떤 세미나를 할 때는 모르지만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회에서 레위기를 가지고 주일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부터 다섯 번의 설교를 레위기를 가지고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만날 정도로 거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  는 사도바울의 말씀이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2. 레위기는 거룩하지 않은 우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결혼예식에 비유한다면, 십계명이 신부와 신랑이 사랑을 고백하고 선언한 결혼계약서 라고 한다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차린 신혼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올린 결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랑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바람이 났습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적어도 다섯 여섯 사내와 바람을 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버리고 타락함으로서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하나님을 만나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위하여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이 깨진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죄를 속량 받고,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레위기에 다섯 가지 제사법이 있습니다.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소제입니다. 가운데 죄 씻음과 직접 관련된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이다. 속죄제(하닷트, purification offering)는 죄를 씻기 위한 제사이고, 속건제(아솸, reparation offering)는 죄로 인하여 생긴 피해를 보상까지 하게 하는 제사이다. 원금에 20%를 배상하게 하였습니다. 속건제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몸값을 치루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량의 은총을 가장 잘 나타낸 제사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의도적인 죄의 문제입니다. 의도적으로 지은 죄도 사함 받을 수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레위기 법은 사함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사로 죄사함 받을 수 있는 죄목를 비의도적인 죄(unintentionally), 부지중에 지은 죄(doing unintentionally)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거룩한 예수의 피를 알면서도 언약의 피를 부정한 배교 죄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죄는 사함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29). 예수님께도 사람에게 지은 모든 죄는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한 죄는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31).

 

3. 오늘은 레위기 1, 2, 3장에 나오는 제사법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려고 합니다. 레위기1장은 번제단에서 피뿌림을 통하여 거룩을 회복하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의 다섯 가지 방식과 과정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짐승을 선택하여(하크라바), 안수하고(스미하), 가죽을 벗기고(히프샤타), 피뿌림하여(체리카). 번제단에 불태웠습니다(히크타라).

 

속죄제의 핵심은 번제단에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피뿌림체리카 하는데 있습니다. 구약은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려 성결하게 하고, 신약은 골고다 십자가상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우리를 단 한 번에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는 내 것이니 내가 취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피는 생명으로써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로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너희들이 마음대로 할 거싱 아니라는 천부인권사상이 배어 있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피 속에는 모든 죄의 근원이 피 속에 박혀있으니 죄를 내게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가 피 속에 유전으로 흐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핏속에 본성적인 죄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을 죽이는 독소입니다. 인간을 죽이고 병들게 하는 독소가 들어있는 피는 먹지 말고 내게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4. 레위기3장은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피와 콩팥과 기름을 하나님께 가져와 불태 워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피는 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동물의 기름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고지혈증 혈압 심장계통의 질병, 판막증 심장협심 등, 갖가지 무서운 병이 기름이 혈관 속에 쌓여서 생기는 병입니다. 고지 좋아하다가 기름이 혈관에 쌓이면 죽습니다. 하나님은 기름 태우는 연기를 향기로운 냄새라 말씀하셨습니다(3:16).

 

콩팥은 왜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콩팥(신장)은 몸속에 들어온 기름 찌꺼기가 쌓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몸속에 들어온 기름이 혈관을 통하여 콩팥에 쌓이면 빼낼 수 없습니다. 땀으로도 안 나옵니다. 운동해도 안 나옵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가져와 불로 태우는 길 밖에 없기 때문에 가져와서 태워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5. 우리 몸속에 하나님 앞에 드려서 불태워 버려야 할 독이 쌓이는 곳이 또 한 군데 있습니다. 심보(mind)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는 없는 말씀입니다. 심보 속에 무엇이 쌓이느냐가 문제입니다. 놀부심부가 있고 흥부심부가 있습니다. 놀부심보를 가진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흥부심보를 가진 사람이 문제입니다. 흥부심보에 쌓이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몸 안에서 만들어 내는 악질적인 독소입니다. 스트레스의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근심, 걱정, 절망 과 두려움입니다. 특별히 두려움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두려움이 얼마나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 아십니까! 근심, 걱정, 미움의 찌꺼기가 쌓여 있는 스트레스 뭉치가 돌아다니면서 몸을 해칩니다. 내분비 계통, 신경계통의 대부분은 스트레스에서부터 오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준 놀부 같은 사람은 하하호호 놀고 먹고 즐겁게 사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흥부 같은 사람은 스트레스에 눌려 갖가지 병에 걸려 산다면 얼마나 억울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17:22)고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면 우리 몸속에서 아드레날린(adrenaline)이라는 악성 독성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어떠한 병마도 물리칠 수 있는 엔도르핀(endorpin)이 생성됩니다. 콩팥 속에 가라앉은 독소라 할지라도 기쁨의 엔도르핀이 들어가면 분해될 것입니다.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리 몸속에 펴져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립시다.

 

6. 레위기2장은 소제(素際)를 드리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소제(=민하)는 유일하게 동물의 희생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곡식을 제물로 드린 제물로 드린 제사이다. 피와 관계없이 드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린 일종의 선물(tribute)이다. 보통 소제는 번제와 함께 드렸는데 번제로서 죄 용서함 받은 것에 대한 감사로 드린 제사입니다.

 

소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과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소금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반드시 넣었고, 누룩과 꿀은 금지하였다. 누룩은 사람을 부패하게 하고, 꿀은 유혹하는 물질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율법주의이고, 사두개인의 누룩은 세속주의 인본주의입니다.

 

설교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메시지가 소제에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라고 해도 누룩이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을 부패하게 합니다. 꿀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에 맛을 내려면 간증이 들어가고 좋은 예화가 들어갑니다. 간증과 예화가 필요하지만 성경의 주심 메시지는 날라가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시편119:103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좋고 읽기 좋은 말씀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 묵상하여 얻은 말씀이 꿀보다 달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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