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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향에 서자 정진권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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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추진하시는 방향에 서서 나아가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믿음생활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그와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유럽 선교의 관문인 마게도니아 빌립보 성의 복음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유럽선교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바나바에게 제안하였습니다. 두 사도들 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1차 여행 때 동행하였다가 중도에서 포기한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두고 가느냐라의 문제로 결국,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아시아 여러 지역을 다니려고 하였는데, 예수의 영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을 들었는데, 주님께서 마게도니아로 보내시는 것이라고 믿고, 마게도니아 첫 성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2.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이나 마게도니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이나 둘 다 선한 일이고,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일이 있고, 그분이 계획과 목적이 있는 사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무조건 밀고 나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선하고 의롭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아닐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나아가시려는 방향이 있는데, 그 방향에서 벗어나면 바리새인처럼 되기 쉽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자기들의 판단기준으로 믿음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 신앙은 죽어라고 일하고 칭찬을 듣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힘 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2).

 

3. 어떻게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성령님께 물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통달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물어보고, 감동을 받고,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묻고 기다리면 됩니다.

 

성령님은 물고 기다리면 말씀하시는데,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지시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 회개하고, 방향을 하나님을 방향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0.1 퍼센트라도 방향이 틀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날마다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새벽기도회가 아주 좋습니다. 나의 방향을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는 시간이 되게 하십시오. 하루의 성공은 아침에 있고. 인생의 성공은 하루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방향에 서기 위하여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만 알고,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과거 미래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욥이 이유 없이 고난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놓치지 아니하고 잡고, 믿음을 잡고 나간 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을 다 알고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믿음은 보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 말씀 따라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로가도 그가 않안 계시고, 뒤를 돌아보아도 안 계시고, 왼쪽을 보아도 안계시고 오른 쪽을 보아도 뵈올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욥기23:8-9입니다. 욥기23;10이 중요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의 신앙을 한 절로 요약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길을 준비하시고 이끄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10년 못갑니다. 변질 됩니다. 3.1운동 때까지 민족운동을 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사들이 10년 못가서 일본을 찬양하고, 젊은 청년들을 대동아 전쟁으로 내 몰았습니다. 정춘수 감독, 윤치오 김활난 임영신 등 당시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감리교가 자랑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역사의 방향, 하나님의 방향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방향에 서기 위하여 나의 생활 방식과 방향을 포기할수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그 때부터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야심이 강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서려면,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임금이 될 수 있는 길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11:24-25). 하나님께서 이런 모세를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마게도니야로 가는 것보다, 자기가 태어나서 공부하고, 자기 무대로 생각한 소아시아 지역을 선교하고 싶었겠지요. 자기가 개척해 놓은 갈라디아 지역을 다시 방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거부하시므로 빨리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기의 길을 포기하였습니다. 자기포기, 자기부정의 훈련이 된 사람이 나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트로이에서 출발하여 마게도니아로 건너가 네가볼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네가볼리 항구에 가면 바울이 처음 발을 디딘 지점에 네 사람의 발을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누가와 디모데의 발입니다.

 

토인비는 그의 <역사연구> 마지막 결론에 바울을 싣고 마게도니아로 간 배는, 서구문명을 싣고 간 배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서구문명의 토대가 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상이 사도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6. 우리는 역사적인 일을 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큰 일이 있고, 큰일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아주 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시시한 일 같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일로 평가 받는 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다니며 에게해와 지중해 지역을 전도하면서 수백 개의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닙니다. 불과 십 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교회들의 성도들이 수백 명, 수천 명 모인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불과 40-50 명이었습니다. 지금 선교사들 중에 이 정도 여행하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엇이 바울의 이렇게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방향에 서서 선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를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사도로 사역하는 교회였고. 당시 최고의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해 놓으면 예루살렘에서 온 교인들이 들어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아니며 교회의 분규를 만들고,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곳저곳에서 40-50의 이방인들이 모인 작은 교회였습니다.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방향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손과 얼굴이 향해 있는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선교를 위하여 파송하고 금식하며 지원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키워낸 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였지만 기독교를 세계화에 시키는데 앞장선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실고, 아시아로 유럽으로 나아간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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