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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선 바울 | 정진권 | 2021-1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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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 공회 앞에선 바울 행전 22:30-23:11 1.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가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시대지만 이스라엘의 행정, 종교, 교육, 사법기능 까지 가진 유대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 유대 사회를 이끌고 가던 하시딤(Hasidean)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시딤은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국권이 파괴된 유대 사회를 이끌어오던 국민운동단체로써 B.C. 2세기경, 마카오 혁명 이후 네 분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열심당입니다. 열심당원들은 무력도 불사하는 무장 혁명가들이었습니다. 칼을 품고 다니면서 유력한 사람들을 암살하고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타케트는 로마 정권에 기생하여 권좌를 누리고 있는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에세네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회를 떠나 광야에서 군집 생활을 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에세네파의 리더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실망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에세네파로 왔다갔다한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적당한 기회가 되면 이스라엘의 독립을 바라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도 인정하고, 백성들에게도 상당히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과 첨예하게 대립하셨습니다. 저들은 자기들도 천국에 가지 못하면서 천군 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고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네 번째 그룹은 사두개파 사람들입니다. 유대사회의 최고위층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계층으로써 로마정권에 붙어서 유대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내세가 없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였습니다. 2. 바울도 바리새파 사람으로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공회에서 유대교 수장들과 한 판의 결전을 벌여야 하는 최후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아나니아가 산헤드린 공회 의장이었습니다. 바울의 공판을 놓고 공회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과 부활도 있고, 천사도 있고, 영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두개인들로 분쟁이 생겼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핍박당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여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던 산헤드린 공회가 부활문제로 서로 공방하다가 공회가 무산되고, 천부장은 바울을 데리고 사령부로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 로마 총독의 감옥에서 총독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며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참 고독하고 외로운 밤이였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며서 어두운 감방 속에서 쑤구리고 않자 있는 바울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바울이 그렇게 사랑하고 구원시키기 위하여 기도한 동족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결사대를 만들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아우성쳤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삼각산 감람산에 밤을 지내면서 가만히 묵상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찹찹하고, 외롭고 고독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 23장의 말씀을 놓고 보면,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의 인생은 마지막 단계에서 망가진 인생입니다. 포박 당하고 쇠고랑 차고 사람들에게 어두운 터널을 터덜거리며 지나가는 실패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을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면 항상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나의 등 뒤에서 주님이 나를 잡고 계십니다. 그것이 욥의 신앙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스키를 좀 타 보셨습니까? 저는 40-50대에 겨울이 되면 가끔 스키를 탓습니다. 고급단계는 아니지만 중급단계에서 재미있게 스키를 탄 경험이 있습니다. 스키 트레이너에게 배운 교육 내용이 생각납니다. 스키를 타고 달리기 전에 먼저 세 가지를 꼭 가리켰습니다. 넘어지는 법, 일어나는 법, 브레이크를 밟은 법입니다. 잘 달리는 것보다 잘 넘어지는 것을 배우고, 일어나는 법을 배우면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빨리 달리는 것 보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초보자들은 직선으로 달립니다. 그러나 스키를 조금 타본 사람은 곡선으로 달립니다. S 자형으로 달립니다. S자형으로 내려오기 위하여 속도를 줄 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브레이크를 밞을 줄 알고,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5.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때 직선으로 쉽게 도달하게 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S자 형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2-3 주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을 걸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몰라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광야에서 굽이굽이 돌리시면서 노예근성을 뽑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려하심이니라” 신명기8:3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소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태7:12입니다. 좁은 길은 잘 다져진 길이 아닙니다. 승용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어둡고 고단한 길입니다. 6.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믿음생활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하시고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것을 보십시오. 세 단계가 있습니다. 세 번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삶을 살게 하시도록 나타나셨습니다.(창12:1). 하나님께서 롯을 떠나보낸 다음에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아브라함이 구십구 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위 완전하라”(창17:1) 나는 엘 사다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엘 사다니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상급주실 자는 상급을 주시고, 벌 줄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해 주시고, 축복하시고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The Pilgim's Progress)이란 기독교 고전이 있습니다. 번연이 청도교혁명 실패하고 12년 동안 감옥생활하면서 쓴 책입니다. 크리스천이 처자를 데리고 멸망의 성에서 시작하여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마침내 천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묘사한 책입니다. 사자와 맹수들이 부르짖는 거리를 지나게 되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수갑을 채워 놓으셨습니다. 기독교도들이 순례자의 길을 가는데 가장 위험한 거리는 낙담의 거리와 허영의 거리입니다. 사단은 낙담하게 하고, 허영심을 부추겨서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낙담의 거리에 지키고 서 게십니다. 허영의 거리를 잘 지나가도록 눈을 감겨주시고 더 좋은 세계를 바라보게 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행전23:11입니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외롭고 두려울 때 일수록 주님이 찾아 오셔서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일수록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오도록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19:4). 광야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이 발을 부르트지 않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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