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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민족사랑 정진권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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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나라사랑

9:1-5

 1. 사도 바울은 유대 민족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민족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B.C. 582 년에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계속 강대국에 의하여 통치 받아 왔습니다. 바벨론에게서 메데 바사로, 메데 바사에게서 마게도니아(헬라), 바울이 살고 았던 시대는 신흥제국으로 부상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가 만들어 놓은 제국을 다니면서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소아시아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 거점으로 삼아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을 받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마치 중국 동북삼성 만주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거점으로 삼아 한족을 전도하고 중국에 있는 50여 소수민족에게 전도한 북방선교회와 같은 선교전략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헬라 말과 헬라철학을 섭렵한 사람으로 로마사람들과 말하고, 교제하는 데 있어서 커리낌 없이 자유자제로 구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면, 요샛말로 하면 금수저 중에 금수저였습니다.

 

2. 바울이 다메석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받은 사명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바울에 마음속에는 항상 유대인에 대한 구원의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방민족들이 이렇게 구름떼처럼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복은 받는데, 어찌하여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돌아오지 아니하고,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 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복음전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뿐 만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까지도 바울의 복음이 잘못 되었고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였습니다. 바울을 괴룁힌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적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 들어와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훼방한 것입니다.

 

3. 바울은 가는 곳 바다 유대인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내 골육 친척을 위하여 저주를 받아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3),

 

바울이 누구입니까?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다선언한 사람입니다.(8:38). 이런 분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내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질지라도 이 백성이 구원받기를 소원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그 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4. 로마서를 자세히 보면, 교회 안에서도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충동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선민주의와 로마의 보편주의가 충돌하는 갈등 속에서 바울의 입장은 처신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헬라인들을 변호하고, 헬라인들에게는 유대인을 변호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바울의 고통을 이해할 만합니다.

 

로마정권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바울에게는 이율배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서 만민은 평등하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유는 천부적인 것으로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고 억압할 수 없다고 주장한 자유주의자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분이 로마제국의 박해 상황에서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니 순복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13:1).

 

당시 로마제국주의기 얼마나 기독교를 박해하였습니까? 사도바울은 기독교 신앙을 보전하면서 어떻게 로마정권 아래서 기독교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기독교 신앙과 로마의 제국주의 사이에서 양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고뇌에 찬 흔적이 역력히 보입니다.

 

5.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이런 갈등에 고민한 적이 없습니까? 아픔이 없습니까? 저는 북방선교회를 창설하고, 일 하면서 항상 진보적인 분들에게는 변절한 목사로 욕먹고, 보수적인 성향의 분들에게는 좌경목사라고 오해를 받고 욕을 먹고 있습니다.

 

탈북자를 먹이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면 북에서 타도의 대상되는 목사입니다. 반대로 북한 동포를 위하여 식량을 보내주는 일을 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면 친북목사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통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 길이 통일 이후에 교회의 미래를 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주 벌판을 여러 번 다녀 보면서 희망이 없는 캄캄한 시대의 오직 하나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그 시대의 빛이었으므로 빛을 향하여 몰려온 것입니다. 그 중심에 감리교회가 있었습니다. 천도교도 아니라고 불교도도 아니고 장로교도 아니고 감리교회가 시작하였습니다.

 

손정도 목사는 고종을 중국으로 파천(播遷)하는 밀명을 받고, 상동교회 이회영 권사와 함께 추진하는 일 때문에 독립선언서에 서명은 못하였지만, 기독교 대표들을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평양에 있는 이승훈 장로를 3.1운동에 참여 하게 한 사람도 손정도 목사이고, 천도교를 삼일운동에 참여시킨 사람도 손 정도 목사였습니다. 손병희 선생을 직접 찾아가삼일운동 민족대표로 나서게 한 사람도 손정도 목사였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전봉준과 우금치 전투에서 5만 이나 되는 천교도를 잃은 후에 민족 운동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6. 3.1운동의 기독교 애국운동이었습니다. 삼일 운동의 영향은 대단하였습니다. 일본이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은 우리민족을 무단통치로 밞으면 밞필줄 알았던 민족으로 알았습니다. 삼일운동은 제국주의에 짊밞 힌 나라들에게 희망을 던졌습니다. 일본 뿐 만 아니라 중국 인도처럼 큰 나라들에게 저항의 불꽃을 던졌습니다.

 

삼일 운동 이후에 국외에서는 중국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이 하나로 뭉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연해주 임시정부와 한성 임시정부. 미국의 임시정부가 상해 임시정부로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대한 제국을 폐하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삼일운동의 결과입니다. 제국이 민국 된 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제국을 폐하고 민국을 만드는데 200-300년 이상 피 비린 네 나는 투쟁을 통하여 얻은 이룩한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우리는 삼일운동을 통하여 불과 6개월 만에 민국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운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민족 앞에 횃불을 던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일을 할 때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고, 민족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통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과, 평화적 민족 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것에 모든 것이 매몰되는 민족정기가 무너지고 도덕적으로 아모미 현상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후에 후유증이 국론을 분열시키는 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불신과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교회가 할 일이 있습니다.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사역은 십자가 정신을 가진 기독교가 할 가장 우선적인 사역입니다. 배제와 차별을 지양시키고 포용과 일치를 만드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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