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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사랑이 희망이다 | 정진권 | 2022-03-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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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희망이다 요일4:7-121.
가을이 깊어가고 창 밖에 담쟁이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폐렴에 걸려 살 가망이 없는 한 소녀가 창문을 열어놓고, 심각하게 담쟁이 잎-새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잎-새가 단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덩굴에 매달려 있는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기의 생명도 끝이라고 생각하고,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밤이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습니다. 이 소녀는 긴장된 마음으로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마지막 남아 있는 한 잎-새를 보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 살아났습니다. 자신의 생명도 저 나무 잎처럼 그대로 생존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담쟁이의 한 잎-새가 소녀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에게 희망을 붙들어 매어준 사람이 누구일까요? 밤새 담쟁이 잎을 그려서 붙여 놓은 노파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그림하나 변변히 그리지 못하면서도 항상 위대한 그림 한 편을 그릴 것이라고 허풍을 떨며 살아가는 술주정뱅이 화가였습니다. 노인은 마지막 잎-새 하나를 그려서 담쟁이덩굴에 매달아 놓고, 그날 밤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 헨리(O. Henry)의 작품,《마지막 잎-새》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2.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마지막 잎-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남은 잎-새입니다. 사랑은 모든 절망을 희망을 세웁니다. 반대로 절망은 모든 희망을 무너뜨립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서 그 마지막 잎새를 죽음의 절망 속에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매달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지막 잎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God is Love). 하나님의 사랑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저 건너편에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을까요? 이 지구에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쁘지 않을 정도로-) 보배롭고 존귀한 자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귀히 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43:1-5). 3.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죽은 아들을 안고 부처님을 찾아가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여인에게 “마을로 가서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아 그 집에서 물 한 사발을 가지고 오십시오. 그 물을 죽은 아들에게 먹이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해답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안고, 과부는 마을로 뛰어 내려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고 다녔습니다. 한 집도 죽음을 맛보지 않은 집이 없었습니다. 실망으로 돌아온 어미에게 부처님은 아들을 잃고, 슬피 우는 여인에게 “그래. 이게 인생이란다. 모든 인생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니라.” 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불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불교는 깨우쳐 주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은 아들을 놓고 진리를 설파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죽은 아들을 살려 어미의 품에 안겨 주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종교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부할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제가 아는 스님 한 분이 계십니다. 절간을 짓다가 기독교인에게 사기당하고 속아서 부도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 이를 갈면서 성경을 탐독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과 싸우기 위하여 성경을 읽으면서 연구하고 조목조목 비판할 거리를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다 읽고 마태복음, 마가복음을 읽고, 누가복음을 읽어 내려가는데 “예수님께서 나인성에 한 과부의 독자가 죽은 상여에 손을 대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고 명령하자, 죽은 아들이 일어났고, 그 아들을 어미에게 건네 주셨다는 말씀을 읽은 순간 죽은 아이를 안고 온 아이를 놓고 진리를 설파하는 부처님과, 죽은 아들을 사려 어미에게 안겨주는 예수의 모습이 스님의 마음을 후려쳤습니다. 아, 이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부활시키시는 분이시구나” 출감한 이 스님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즉시 스님은 승복을 벗고, 협성신학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감리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스님들을 전도하여 기독교로 개종하는 운동을 벌리고, 개종한 승녀들의 공동체를 마련하는데 전념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서울연회 중생교회를 개척하시고, 서초 지방감리사로서 저와 함께 감리사 일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신 김진규 목사님입니다. 5.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인생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헤,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과 영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은 전혀 다릅니다. 죽음에 직면하면 다릅니다. 인간의 사랑과 존경은 영원의 양식을 주지 못합니다. 허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은퇴한 노 교수가 젊은이들에게 죽음학(thanatology)을 열강하는 교수한 분이 계십니다. 이 어령 교수입니다. 이화대학 교수로 문화부 장관으로, 88 올림픽을 기획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도랑태를 돌리며 나타낸 소년의 이미지로 올림픽의 역사성과 영원성을 나타냈다고 세계 사람들에게 찬사르 받은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 어령 교수는 딸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베스트 셀라를 내고, 이번에 또 88세에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로 놀라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팔 십 노령의 나이에 이어령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죽음에 대하여 항상 생각하라”(Momento mori)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에 이 어령 교수가 기자와 마지막 인터뷰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섬김은 많이 받고 살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며 살았다”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살지 못하였다는 고백입니다. 존경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고 존경을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환대와 사랑으로는 인간에 밀러오는 허무(虛無)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마지막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느낄 수 있을 때 죽음 앞에서 Good Bye 하고, 죽음 앞에서 See you again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유한한 인생을 영원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6. 어느 마음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관광버스 기사가 손님들을 모시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가 지쳐 잠에 빠져 있었는데 산길 내리막길에 들어선 순간 브레이크에 고장 났습니다. 운전사는 잘 아는 길이었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설상가상으로 내리 막 길이 여러 개 겹쳐 있는 난 코스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관광객들이 이 광경을 보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운전기사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 길을 한 개, 두 개,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커브 길을 통과하였고, 모든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이제 마을 모퉁이에 버스가 세우기만하면 되는데, 마을 입구 신작로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운전사는 피하라고 경적을 울리며 달려갔습니다. 어린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피했지만 한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관광객을 살려야 할지, 저 어린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어린아이를 치고, 버스는 건너편 언덕에 멈춰 섰습니다. 차가 서자마자 운전사는 그 아이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차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내려와서 운전한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운전도 잘 못하는 살인자! 살인자! 라고 혀를 차고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 순간 그 동네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만 하세요. 저 아이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저 운전기사의 아들입니다” 운전기사는 승객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기아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 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하나님의 이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소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이 사랑을 품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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