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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꿈 정상에서 무너지다 정진권 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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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꿈, 정상에서 무너지다.

2:1-5

1.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 요지를 점령하고, 드디어 각 지파대로 땅을 나누어 갖고, 이제 남은 가나안 잔당들을 진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사람들이 잔당들을 쫓아내는데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사사기 121절부터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의 잔당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말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9-33절 까지 여덟 번이나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1:34절에 보면 아모리 족속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잔당들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라고, 그들의 노동을 사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편하게 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이 주는 즐거움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야웨 신을 버리고, 가나안 신을 섬기며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야웨신을 섬기기는 어렵거든요,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라는 것도 많아요. 그러나 바알신은 풍요를 줍니다. 의무감이 없습니다. 아세라 신은 성욕을 만족시켜주십니다. 윤리적 부담도 없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2. 가나안 정복의 정상에서 무너진 근본적인 원인은 언약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족속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한 길갈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성을 져 버렸습니다.

 

길갈 언약이 무엇입니까?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에서 짊어지고 나온 돌을 가지고 나와서 기념비를 세우고, 할례를 행하며 이제부터 성별된 삶을 살겠노라고 하나님과 약속한 언약입니다. “할례란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잘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앞에 놓고,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5:2-3).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왜 하필이면 여리고 성과 같은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 앞에서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을 바꿔 놓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해야 할 일로 보신 것입니다.

 

몸만 애굽을 떠났을 뿐, 마음은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애굽의 근성을 버리기 전까지는 여전히 노예일 뿐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온 노예들에게 광야의 적보다 더 무서운 싸움은 가치관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노예의 가치관을 뽑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알신과 아스다돗 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바알은 재물의 신이요, 아스다돗은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신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 대한, 일제시대 때의 박해나 공산주의자들의 박해 보다 더욱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본주의입니다. 돈이 인간을 타락시킵니다. 칼의 힘보다, 이념의 힘보다, 더 센 것이 돈의 힘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길갈의 언약을 파괴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바알신과 아스다돗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사기 23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게 하겠다고 저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던지 그곳 이름을 보김이라고 불렀습니다. ‘보김이란 통곡하며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2:4-5). 보김의 눈물은 하나님의 저주를 물리는데 아무 효력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보김의 회개는 가짜였습니다. 용서받은 감격의 눈물도,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의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보김의 통곡으로는 정상에서 무너져 버린 가나안의 꿈을 다시 세울 수 없었습니다.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그냥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어쩌면 가나안의 쾌락을 버리기 싫어서 통곡하였는지도 모르지요. 211-1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4.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빛났던 시대는 바로 여호수아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호와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의 신앙을 힘 있게 세워가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의 깃발을 꽂고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혀나갔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때였습니다.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해주실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복사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땅을 분배받아 살만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여호와의 깃발을 내리고 우상과 타협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즐겼습니다. “바알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제단이 철거되고 바알신당이 세워졌습니다.

 

사사시대는 야웨의 유일신관이 무너지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목표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살아야 할 목표와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시대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목표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자 목표가 없어졌습니다.

 

목표가 없어짐으로 사명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시대와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이입니다. 여호수아의 시대는 전쟁을 하던 시대입니다. 여호와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갈 때 이스라엘은 언제나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였습니다.

 

사사시대는 깃발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깃발을 내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숨기고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고 함께 살아갈 때 하나님의 신은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할 필요성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이 있는 곳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앞에서 흔들리고 가나안 백성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여호수아24:15 입니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과 우상 숭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여호수아의 단호한 결단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짐하였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6. 사사기2:7에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백성들이 불과 몇 년이 지나서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에게 마음을 돌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그를 따르던 신실한 세대가 다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었지만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가나안 신상을 세우고 섬겼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을 전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손들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호수아처럼 자녀들 앞에 여호와 신앙를 바로 세울 자신이 있습니까? 나는 여호와를 섬길 것이니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려거든 떠나라고 선언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런 결단이 없으면 자자손손은 고사하고 하나님 신앙을 자손 삼사 대 까지도 유지하지 못하고 여러분의 자손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갈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코로나 오미크론이 지나가고 마스크를 벗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기대했는데 다시 오미크론 보다 센 스텔스 오미크론이 득세할 거라고 합니다. 정말 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런 혼미한 시대에 우리가 분명히 세울 믿음의 선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정상에서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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