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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체험과 부활의 능력--(부활절 새벽예배) | 정진권 | 2022-0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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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활 체험과 부활의 능력 고전15:12-19 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자 뿔뿔이 헤어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모였으며, 두려움에 떨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 전역에 다니면서, “예수 부활하셨다” 고 나팔을 불고 다닐 수 있었습니까? 부활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목격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을 증언하기 위하여 주의 날을 정하고, 모여서 부활하신 주님을 축하하고, 경배하였습니다. 이 날이 바로 안식 후 첫 날, 주일입니다. 주일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날 도 아닙니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부활을 증언하는 날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들의 부활 신앙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2. 성경은 부활사건을 세밀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무덤에서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보이시고, 베드로로부터 시작하여 11제자들과 500여 명의 사람들에게 일제히 나타나셔셔 부활한 몸을 보이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손가락을 옆구리에 넣어 부활하신 몸을 만져 보게도 하셨습니다. 갈릴리 디베랴 호숫가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을 준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함께 동행 하면서 부활사건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제자들에게 성경에 쓴 자기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사건(fact)에 근거한 것이지, 부활절 신앙(conviction)이나 신조(crode), 교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헬라철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환상가운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3. 부할신앙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할시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킬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부활시키셨습니까?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부활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부활한 몸으로 주님과 함께 영생에 들어갈 것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체험하고 부활신앙을 갖고 사느냐입니다. 4. 부활을 어떻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11:1, 한 말씀만 이해하고 믿으면 믿음에 대해서는 끝입니다. 믿으면 예수님의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온유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이 되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영이기 때문에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만져볼 수 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리고 파도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면 성령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눈먼 소년이 방패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은 하늘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애야! 너는 네 연이 땅에 떨어졌는지, 하늘로 날아가 버렸는지 어떻게 알고 연을 날리는 거냐? 라고 물었습니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제 연이 지금 하늘높이 날고 있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이인데 어떻게 네 연이 하늘을 날고 있는지를 안단 말이냐?"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전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그러나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제 연이 얼마나 힘차게 하늘을 날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하늘 높이 나르는 방패연을 부활의 신앙이라고 한다면, 연을 띠우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람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부활의 신앙을 띠울 수 있습니다. 연을 잡고 있는 끈은 믿음입니다. 연이 날아가는 것을 인식하려면 끈이 있어야 하듯이 믿음의 끈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방패연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 소년의 희망을 가득히 실고,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고 있듯이 여러분의 영혼의 방패연을 띄워 날마다 부활의 소망을 싣고, 저 천국에 이르기 까지 비상하시기를 바랍니다. 5. 부활신앙으로 무장하면 세가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의 권세를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지금 역사하는 악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권능을 무력하게 한 것입니다. 죽음이 쏘는 죄의 독침을 빼버린 것입니다. 마치 독사에게서 독을 빼버린 것과 같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죄의 사슬로 묶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데 그 쇠고랑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를 사단으로부터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 하심을 받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민족의 차별도 없고, 종교의 차별도 없습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구원받고,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로마서3:30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속량의 도리입니다. 속량(贖量)이란 속전(贖錢)입니다. 노예를 사서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낸 돈입니다. 6. 부활신앙은 사탄의 역사를 이깁니다. 사탄의 역사는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부활신앙은 가짐으로 지금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는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죄로인한 인간의 고통과 좌절과 절망과 병을 이깁니다. 부활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다 마치고 하나님 나라,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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