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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의 의미--(주일공동예배) 정진권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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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의 의미

20:19-23

 

1. 성경적 부활신앙을 정리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과, 부활하신 주님처럼 나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신앙 가운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시지만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사도바울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그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라.”고 과거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영은 죽고, 혼과 육으로 되어 있는 우리 육체 속에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모신 사람의 몸을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15:44).

 

예수님께서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무엇으로 살리셨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1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으니라고전15:45입니다

 

2.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라는 의의(意義)가 무엇인가, 부활신앙의 의미(meaning)에 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증거입니다. 인류는 아담이 범죄 한 이후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image)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단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소원해진 틈을 타서 죽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여 왔습니다.

 

죽음은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무효로 만듭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공평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 공명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헛된 꿈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육체라 할지라도 죽어보십시오. 시체와 하루 밤도 함께 잘 수 없습니다.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다 준 자가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가 모든 사람에게 미친 것입니다.(5:12). 이 세상에 난 사람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피를 받은 인간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고, 죄의 값을 치를 방도가 없습니다. 아담처럼 공허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도 세상 사람이 모두 가는 길,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몸을 입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것도 참혹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을 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의 의의는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느니라 로마서8:1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죄를 속량하심으로 죄가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습니다.(벧전2:2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8:34 말씀입니다.

 

4.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의인의 최후의 승리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불의한 자들이 강력한 힘과 조직과 영향력을 가지고 언제나 의로운 자를 핍박하고 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불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의심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사악한 사람이 잘살고 나는 이럴 수가 있을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고난과 의인의 억울한 죽음을 끝까지 침묵하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의의 승리와 불의의 패배를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제사장들과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무덤에 장사지내고, 상황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에 계신 분은 잠자고 계신가요? 불꽃같은 눈으로 불의한 자들이 하는 행동과 정의로운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아직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의인을 향하시고, 의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잠시 불의가 정의를 묵살하고 이기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불의를 영원히 용납하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의인의 최후승리를 보여주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무덤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서 정의(正義)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신앙은 의()의 최후의 승리는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 결말을 좋게 해주시고, 정직한 자를 지지해 주시고, 의로운 자가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5.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평화의 축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처음으로 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20:19 말씀입니다. 평강- ‘에이레네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샬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싸움에서 이김으로 주어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힘 센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평정하고 난 후의 평화가 아닙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아닙니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짓밟히고, 힘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에게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가운데서의 평화입니다. 환난과 핍박과 궁핍과 헐벗음과 죽음을 초월한 평화입니다.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평화입니다.

 

6. 예수님이 끝까지 평화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디로 가셨습니까? 천군천사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장을 처단하고, 빌라도와 그 장졸들에게 너희들이 무덤에 묻고 지키던 주님이 이렇게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원수 갚으러 가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배신하고 도망하고,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어떠한 현장입니까? 살기 좋은 땅입니까? 자유와 평화가 있는 땅입니까? 예쁜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갈릴리입니까?  아닙니다. 갈릴리는 고난의 현장입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배가 가장 혹독한 지역이었습니다. 로마에 의하여 찢기고 착취당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장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가셔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은 이런 평화를 주기 위함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14:18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27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의 의의는 평화(平和)입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의 평화가 아니라 전쟁 중에서도 평화를 누리는 평화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내주하시고, 함께하심으로 고난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이런 부활절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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