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홈 >
  • 말씀/찬양 >
  • 주일 설교
주일 설교
하나님의 자비를 이렇게 구하라 정진권 2024-02-1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87

http://jongroch.or.kr/bbs/bbsView/13/6360546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이렇게 청하십시오.

삼하16:5-13

 

1.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죄가 삿삿히 들어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앞에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일1:8).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자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1:8).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움직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미쁘시게 용서하실까요? 오늘 다윗과 다윗의 시종이었던 시므이에 때한 다윗을 이야기를 통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목자의 아들로 태어나 골리앗 장군을 쳐부수고, 사울의 수비대 장군으로 입신하여, 남 유다의 왕이 되고, 드디어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되어 이스라엘을 근동 최대의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말년에 자식들의 문제로 고통당하였습니다. 그 하나가 압살롬의 반란사건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들이 반란을 꾀한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다윗왕은 패주가 되어 대궐을 떠나 바후림 이라는 지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베냐민 지파 사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도망가는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시무이의 논리는 다윗이 사울를 죽이는데 가담하여 피를 흘리게 한 죄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압살롬에게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삼하16:8말씀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사울을 죽인 자라고 저주한 것은 근거가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삼상29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 지역, 가드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아기스가 블레셋과 동맹하여 이스라엘을 친 나라의 왕이었으니, 다윗이 바로 사울을 죽이는데 가담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과 그의 아들이 요나단이 전사한 불레셋 전투에 직접 참전하지는 아니 하였습니다.

 

다윗을 호위하던 아비새 장군이 칼을 뽑아들고 임금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죽이려 칼을 뺏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렸습니다. “저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시므이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신 것이니 내버려 주라는 것입니다. 삼하16:10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엿보이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려고 하는 다윗의 태도를 보십시오. 다윗이 죄가 없어서 성군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그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다윗을 성군으로 만든 것입니다.

 

3. 압살롬 반란이 진압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바후림에서 다시 시므이를 만났습니다. 시므이가 다윗 왕에게 나와 굴복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내주 왕이여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을 기억하지 마옵소서. 내가 범죄한 것을 알고 내가 먼저 내주 왕을 영접하나이다(삼하19:20).” 얼마나 간교하고 가증스런 모습입니까?

 

호위대장 아비새가 시므이의 간교함을 보다 못해 칼을 뽑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삼하19:22입니다. 내가 사울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시무이의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시므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신하들 앞에서 폐부가 찔리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다윗은 시므이의 주장을 인정하고 글를 살려주었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어찌 용서하지 아니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어떤 어려운 문제가 닥쳐올 때, 신앙적으로 해석하십시오.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갖고 계신 목적과 계획을 발견할 것입니다. 다윗은 가장 처절한 상황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들의 반역으로 쫓겨 도망하는 다윗의 상황은 그의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들도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라는 삼하15:30에 한 마디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므이가 도망하는 다윗에게 모래를 뿌려 가면서 저주하였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다윗은 이 상황을 믿음의 차원에서 해석하였습니다.시므이가 돌을 던지면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믿음의 해석이란 상황 속에서 뜻(the Meaning)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해석학(解釋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해석학이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감당할 수없는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불행한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십시오. 그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운 상황속에서도 믿음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것조차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믿음으로 해석하면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5. 오늘 본문 중에서 절정이 되는 말씀이 삼하16:12말씀입니다. 함께 낭독해 보겠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시므이의 저주함을 보고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멸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51:17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받으십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야웨 하나님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죄 없이 당하는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죄를 짓고,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이라 할지라고,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주셔서 위험한 경지에서 구원해 주시고, 치유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107:20

 

6. 현실을 현실 그대로만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차원에서 해석하십시오. 이것을 잘한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 장군입니다. 다른 지파 장수들을 가나안 땅과 그 사람들을 보이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거민을 잡아먹는 땅이고, 그 사람들은 거인이다. 우리가 그 앞에 서면 메뚜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현실을 파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심히 아름다운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거구의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밥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열 지파의 장수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이라는 말씀입니다. 민수기14:9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나안 땅과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해석하였습니다.

 

이제 믿음의 해석학(解釋學)이 무엇인지 아셨지요? 해석학이란 말이 어려운 말 같지만,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나를 보고, 역사는 보는 것입니다. 원래 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은 쉬운 말을 어려운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나를 보고, 나의 과거를 해석하고, 현실을 해석하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우리 가정을 보고, 우리 교회를 보고,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무한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비전을 볼 것입니다. 믿음의 시각에서 우리 가정을 해석해 보십시오. 가문의 약점이 오히려 가문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로교회 45년의 역사가 참 풍란이었습니다. 분규과 갈등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보십시오. 정말 고난의 역사입니다. 한민족이 5천동안 어떻게 여기까지 존속하여 혈통과 역사와 문화를 이어 왔는지 기가막히는 역사입니다. 고조선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하늘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신이 있었음을 믿었습니다. 놀랍게도 환인(桓因) 한웅(桓雄) 단군(檀君) 신으로 섬기는 삼위일체 천신사상입니다. 조선은 하늘의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고조선을 이은 부여와 고구려와 동예는 그 하눌님에게 가을에 천신제(天神祭)를 드리고 섬겼습니다. 놀라운 우리 조상들의 신인식(神認忍)과 하늘을 섬기는 방식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신령한 사람 정진권 2024.02.18 0 84
다음글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무기 정진권 2024.02.04 0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