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홈 >
  • 말씀/찬양 >
  • 주일 설교
주일 설교
신령한 사람 정진권 2024-02-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85

http://jongroch.or.kr/bbs/bbsView/13/6362833

신령한 사람

고전2:13-3:3.

 

1.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의 특성이 무엇일까요? 신령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정말 영적인 존재인가고민하고, 의구심을 가자고 고민 될 때가 있습니다. 왜 고민할까요? 우리가 아직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 때 내가 영의 사람인 것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인지 확. 신하는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지고 판단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정의 확신은 재물의 소유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부자가 되어어야 예정이 확신되기 때문에 장로교인이 부자가 되는가 봅니다. 실제로 기독교 재벌의 기업이 거의 장로교인이라고 합니다.

 

재산을 많이 모으지 못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였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영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하지 않지만, 언제인가는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성도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빌립보서3:12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간 까지 잡으려고 달려간 그것이란, 완전구원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분도, 아직 다 끝났다고 자부한 것이 아니라 완전구원을 푯대로 삼고 달려갔습니다.

 

2. 바울은 교회 안에 교인들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육신에 속한 사람, 그리고 신령한 사람입니다. 첫째, 육에 속한 사람을 사도바울은 프쉬키코스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 natural ma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인입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지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몰려오는 청중들을 무리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먹는 것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온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본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임금이 되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복음6:26 말씀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기적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먹는데 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3. 두 번째 분류의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르키노이스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worldly ma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신령한 경험을 못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 간에 파벌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직도 너희들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져서 서로 시기하고 분쟁을 일삼았던 것 같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믿음 생활한 경륜도 있고, 성경의 지식도 있고, 도덕적인 의무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아직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고 말씀에 사로잡히지 못한 성도입니다. 잘 나가다가도 세상적인 방식이나 경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기기 때문에 마지막 결론을 내릴 때는 항상 자기중심적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거의 육신에 속한 자들로 인하여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용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인본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바리새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의 속한 사람에게 판단받고,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고린도교회의 신령한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 책 잡힐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2:16). 그들이 판단에 휲쓸리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영을 가진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4. 세 번째 분류의 사람은 영적인 사람, 신령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프뉴마티코이스'라고 불렀습니다. 영어성경에 spiritual man이라고 변역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세례 받고, 계속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님과 소통이 되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신령한 사람인가를 아주 쉽게 측정할 수 습니다. 성령님께서 내 삶을 얼마만큼 지배하고 계신가? 성령 충만의 퍼센트가 중요합니다. 성숙한 믿음의 단계, 성결의 단계라면 성령님이 85%는 충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령의 지배들 받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갖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의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고백한 말씀입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2:20).

 

5. 하나님을 닮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성령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아갑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가 서로 닮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하면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고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 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6. 하나님 닮기 위하여 성령님과 친숙하게 지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숙해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각 서신의 마지막에 항상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성령과 교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성령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대화를 일방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친구가 총장이 있습니다. 한 시간 전화하면 55분을 자기 혼자서 말하고 5분만 말하면 아이고 피곤해 다음에 다시 전화하자고 합니다. 다른 교수들도 총장님과 대화가 안 된다고 야단들입니다. 내가 우리 집 사람에게 친구 흉을 보았더니 당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요. 저도 인정합니다. 대화의 방법을 교정하고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8).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과 서로 교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부르짖는 기도만 하지 말고, 묵상하며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기다리며 가만히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서부터세밀하게들려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사벨에게 쫓겨 호렙산 굴속에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없었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 후에 고요하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왕상19:12).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무엇입니까? 마음속에서부터 들여오는 성령님의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신령한 성도가 되어서 모든 것을 판단하나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 판단 받지 않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 정진권 2024.02.25 0 81
다음글 하나님의 자비를 이렇게 구하라 정진권 2024.02.11 0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