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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에서 구원 정진권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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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

8:31-39

 

1.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철저하게 살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요한서신을 쓴 유력한 장로는 무릇 하나님께서 난 자 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믿음입니다. 영하 20-3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엄동설한이라도 보일러가 깔려 있는 따뜻한 집안에 들어가면 춥지 않습니다.

 

풍랑이 몰아치는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 있더라도 그 바다를 다스릴 수 있는 함대 사령관이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춥다하더라도 주님의 품 안에 있다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파도가 일고 풍랑이 몰아쳐도 주님이 운행하시는 배를 타고 가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다보면 천국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 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고 변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여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죽이시면서 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공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형벌 받은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보응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34:7입니다. “하나님은 질두 하시는 분이시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라라”(5:9)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든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보보서2:10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려면 완전해야 합니다.

 

하루에 3번씩만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성자의 반열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3번씩이면 1년에 1.000번 죄를 짓게 되고, 80생을 산다면 8만 번이요, 90생을 산다면 9만 번 이상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8만 번 9만 번의 죄를 지은 사람이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3. 이런 죄악 된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나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입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니라.”고 로마서3:10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믿음의 법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구원은 나에게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경건하고 내가 믿음이 있고, 내가 거룩하여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5:8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아들까지 십자가에서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난할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려 고생할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4. 사도바울은 오는 로마서8:34-37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자를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까? 믿음으로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38). 저들은 믿음을 위하여 고문을 받되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지 아니하고,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광야와 산과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예수님이 나의 구주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가로등 등잔의 기름이 되어 타죽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송하며 가로등의 촛불이 되었습니다. 사자들의 먹이가 되면서도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할 때마다 나는 당신들을 축복할 것입니다. 나를 송곳으로 찔러 보십시오. 나는 사랑의 피를 흘릴 것입니다. 나를 사자의 먹이로 던져 보십시오. 나는 사랑의 재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워 보십시오.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들의 마음을 녹일 것입니다"

 

4.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네 가지 한계상황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죄와 고통과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단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우리의 멱살을 움켜잡고 끌고 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와 그 결과로 오는 죽음입니다.

 

사단이 죄를 폭로한다고 위협하면 꼼짝 못합니다. 죽인다고 위협하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누가 죄와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까? 지옥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죄를 이기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해방되었네해방되었네죄와 사망의 법에서

 

5. 현대과학은 사람의 생명을 2050년도에 가면 뇌세포까지 재생시킬 수 있게 되는데 150세까지 살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70년대 노인들은 보통 75세 정도 살 것을 희망하였다고 하는데, 40년이 지난 지금은 희망하는 년 수가 90-95세 라고 합니다. 앞으로 30년이 지나 2050년대 사람들은 아마 100-120년 까지 살려고 희망할 것습니다.

 

자동차 부품처럼 인간의 장기를 바꾸어 끼우고, 뇌세포를 재생시키고 늙지 아니하는 호르몬을 투입하고, 120년을 산다하더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장수한다면 불행을 지속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희랍의 신()가운데 오로라(Aurora)라는 여명의 여신이 있었는데, 티토노스(Tithonus) 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을 고백하여도 티토노스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음으로 '불멸'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티토노스는 늙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지자 오로라에게 왜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하느냐고 항의하였습니다. 오로라는 "내가 언제 불멸을 준다고 했지 젊음을 주겠다고 약속했느냐" 고 말했습니다. 결국 티토노스는 병들고 늙어 귀뚜라미가 되어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이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괴퇴(Goete)<파우스트(Faust)>가 다루는 문제가 바로 젊음에 대한 욕구입니다. 파우스트는 네 영혼을 나에게 달라 내가 젊음을 주겠다.”는 악마 메피스트팔레스의 유혹에 넘어가 젊음과 영혼을 바꿉니다. 젊음과 건강에 대한 욕구는 파우스트 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젊게 해준다면 무엇이든지 투자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6. 에덴동산에는 선악과 나무와 함께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나무의 길을 불 칼을 가지고 지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주 받은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산다면 이것보다 더한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현대 과학자들이 하나님이 금기한 생명나무 길을 뚫으려고 돌진해 가고 있습니다. 귀뚜라미처럼 되어서 100120년 살아야 무얼 합니까? 아름답게 살고, 보람 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아브라함처럼 175세를 살고, 모세처럼 120살 장수하며, 생명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다가 주님과 영원히 연합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 모델이 되는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에녹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고 살다가 하나님이 데려가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5:24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갔다는 말씀을 소천(所天)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과 산보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로 이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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