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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다니엘 득세--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신약]-- 예수님 &베드로) 정진권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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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신약]

 

 

[10]. 예수 그리스도의 십가가의 영성 (kenosis)

 

1.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고 표준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수도사들처럼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규율을 가지고 영성생활을 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영성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당시 사람과 똑같이 성전에 올라가 정결 예식을 행하셨고, 30년 동안 고향 나사렛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형제들과 함께 사셨고, 갈릴리 선교 현장으로 나오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생활은 말씀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살 때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성경을 논할 정도로 말씀에 능통하셨습니다. 회당에 들어가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시고, 회당에 들어가서 이사야서를 가지고 책을 펴서 강론하셨습니다( 4:18).

 

예수님의 영성 생활은 기도생활이었습니다. 낮에는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백성들을 섬기는 일을 하시고 밤에는 쉬시고 새벽에는 습관적으로 기도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 하셨습니다. 영성생활은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한적한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1:35, 22:39).

 

2. 예수님의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십자가의 영성은 자기비움의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아들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종의 옷을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7-8.

 

자기비움의 영성은 예수님의 영성의 절정입니다. ‘자기를 비웠다.’ 'kenosis' 라는 것은 자기위치, 자기주권, 자기 영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기비움 없이는 영성의 최종 목적지인 예수님 닮기’(imitatio Christi)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비움의 영성을 얻기 위하여 먼저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부정을 요청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능력을 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포기하는 것이 권리포기입니다. 하나님이 스톱하실 때, 일을 멈추고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권리포기의 훈련입니다.3. 예수님의 영성은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 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고향 나사렛에 계실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사셨고, 공생애 동안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섬기셨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면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사건을 가장 주요한 자리에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성만찬을 뺏습니다. 섬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섬김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섬김을 통하여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막의 수도사 안토니우스(St. Antonius)는 평생을 깊은 사막에 들어가 살았지만 마지막 시기에는 섬김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사막에서 나와 병자들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수도사의 전통이 되어 탁발 수도회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함께 노동을 하면서 예수님의 섬김을 보여 주었습니다.

 

4. 권리를 포기하고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데 두 가지 원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탐심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탐심이 왜 생깁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에서 하나님과 함께, 다른 성상도 섬겼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섬기지 아니하고, 동시에 우상을 섬겼습니까?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탐심의 우상의 영이 들어옵니다.

 

두 번째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자기 지식과 경험과 공동체의 이념과 문화적 전통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받치고 서 있는 나의 원칙, 나의 양심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상고하고 연구하면서도 왜,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까?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대적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믿었고,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하여 예수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애국인줄 알았습니다. 고정관념입니다.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형성된 고정관념보다 자아를 견고한 성벽에 가두어 놓는 우상이 없습니다.

 

5. 권리를 포기하고 섬김의 자리로 나가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예수 따라가기예수 닮기입니다.

 

자기의 권리를 철저히 포기하고,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면 영혼 속에서 숨어 있는 하나님의 광채가 흘러나옵니다. 섬김을 받을 만한 자격과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섬김 받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섬기려고 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형상은 망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성은 자기의 권리를 철저히 포기하고,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는 자기 비움의 영성입니다.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7-28.

 

 

 

[11]. 베드로의 어부의 영성(piscator) (4:18-20)

 

1.  베드로의 영성생활은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베드로의 영성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영성입니다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거닐다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만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배신하고 돌아선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베드로를 찾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디베랴 호수에서 숯불에 구운 고기와 떡을 떼어 먹이시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16.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혜사 성령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분으로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현장,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2.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사람을 낚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사람을 낚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각종 병자를 고쳐주시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교회와 천국열쇠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8)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9)

 

3. 어부들에게 주신 특권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득권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전 1:8절입니다. 이 언약이 이루어진 사건이 사도행전 2:1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현장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루에 3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4. 왜 이런 제자들이 돌에 맞아 죽거나 칼에 맞아 죽고, 가죽이 벗겨져 죽고 십자가에서 죽었을까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그렇게 죽은 것입니다. 순교는 예수님의 길을 끝까지 간 자의 영광입니다.

 

순교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19:28).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Origen)은 항상 순교할 준비를 하면서 독신 생활하고 단식 생활로 일관하였지만 순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단 한 번에 순교하는 것만이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인 순교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순교자는 꼭 총 칼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아니함으로 칼에 맞아 죽고 총에 맞아 죽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날마다 죽는 사람들도 순교자의 반열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5. 어부의 영성은 순교자의 영성입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은 다음에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영문 밖으로 쫓겨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는 밀알의 원리는 십자가의 법칙입니다. 이 십자가의 법칙대로 살다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사라져 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순교자의 영성입니다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자는 교회의 씨앗이다. 너희가 우리를 타작할 때 마다 우리는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사람들이 불어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순교자의 피가 강물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순교자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성도들의 가슴속에 살아 남아있는 것입니다. 순교자는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의인은 영원히 기억하게 되리라.”(시편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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