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직업-세계관 이해하기 | 이미순 | 2021-08-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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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 샬롬! 코로나19가 하나님의 역사(役事, 행하여 이루심)하심 가운데 잘 극복되도록 기도합시다. 성경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8:32) 6-1. 직업 - 세계관 이해하기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관은 모든 이야기처럼 ①목적, ‘사명’(선하고 의미 있는 목적을 향한 움직임) ②문제(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나 돌파되어야 할 장벽) ③해법(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관’은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왜 세상이 존재하는가, 왜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주된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목표인가? -인간 본성은 무엇이 문제인가, 왜 현실과 이상은 동떨어져 있는가, 무엇이 우리에게 주괸 문제인가, 왜 우리는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무엇이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인가? -문제 해결의 방법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해결하거나 고치는 주된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장벽을 돌파할 수 있는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나 세력은 누구인가? 세계관에 관한 <표>를 먼저 참고하고 다음 글을 보길 바랍니다. <세계관 표>
성경이 요구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모든 문화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복음이 문화 또는 세계관 속으로 들어갈 때 도전과 긍정이 함께 일어납니다. 인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왜곡된 것들과 우상숭배적 요소들을 깨끗하게 하고 미해결된 이야기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합니다. 우리는 특정 문화와 세계의 세계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보는 방식을 달라지게 합니다. 우리의 직무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선이며 보존할 것인지, 무엇이 왜곡되어 있어서 거부해야하는 지 그리고 복음으로 무엇을 수정하고 개명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철학자, 베르쟈예프(1874-1948)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우주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주가 인격의 일부분인 것이다. ... 인간은 자유인이 되기보다는 쉽게 노예인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노예의 길은 쉬우나 자유에의 길은 어렵고 험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일상에서 최후의 말은 죽음에 속한 것이 아니라 부활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베르쟈예프)”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사실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격은 세계적인 것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하며 한 인격은 이 우주보다 그 비중이 더 무거운 것으로서 말했습니다. “인격은 우주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주가 인격의 부분이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격의 중요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인격의 주체성이 엄청난 것인데도 사실 인간 생활 전면에 걸쳐서 인간은 그 노예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과 문화란 이름 아래 인간을 더욱 비인간화 되어 노예화 시킬 위험성 속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허위와 부정이 문명과 문화의 근저에 존재한다는 것과 역사에는 원죄가 있다는 것과 사회전체가 많은 부분이 허위와 부정 위에 세워지기가 쉽기에 사람들은 해롭고 불리한 것일지라도 올바름을 보호하는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회복의 길은 곧 인격의 주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자유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은 자유보다 노예성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예에의 길은 쉽고 자유에의 길은 험하고 투쟁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노예냐 자유냐’ 저서에서)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회복’을 위한 바른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악이 만연한 세상을 이기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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