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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정의-타자를 위한 사람들2 이미순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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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2

샬롬!

 

7-1. 정의-타자를 위한 사람들2

 

성경말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6:2)”

 

성경은 사마리안 사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외면당한 이들에 대한 자비에 참여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1. 아담과 하와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1:28) 창세기 3장에서 죄가 하나님과의 영적 소외를 일으켰고, 감정적 소외가 내면에서 생겨나, 사회적 소외가 서로에게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물리적 소외가 자연에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타락의 결과로, 인류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거부감을 가지며 죄책감이 생겨났습니다. ‘죄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합니다.’ 죄는 단절을 가져오며 정체성을 상실하고 의미를 상실하며 불안과 공허를 겪게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어, 전쟁과 범죄, 가족 붕괴, 억압과 불의를 겪게 합니다.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단절되어 굶주림, 질병, 노화, 그리고 신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이 이 모든 죄의 영향들을 치유하는 것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족장시대에 아브라함의 씨앗은 빈곤을 통하여 나라들에게 축복이 됩니다. 이 시기에 살았던 욥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난한 사람들을 잊은 이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할 때에, 나는 거절한 일이 없다. 앞길이 막막한 과부를 못 본 체 한 일도 없다. /나는 배부르게 먹으면서 고아를 굶긴 일도 없다. /일찍부터 나는 고아를 내 아이처럼 길렀으며, 철이 나서는 줄곧 과부들을 돌보았다. /너무나도 가난하여 옷도 걸치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나, 덮고 잘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기른 양 털을 깎아서,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혔다. 시린 허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더니,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축복하곤 하였다. /내가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아를 속이기라도 하였더라면, /내 팔이 부러져도 할 말이 없다. 내 팔이 어깻죽지에서 빠져 나와도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차마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할 수 없었다.(31:16-23)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사회적 책임에 관한 많은 율법을 주셨습니다. 친척과 이웃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결핍이 사라질 때까지 도와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15:7-10)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14:28-29).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공급하고(15:12-15), 땅을 회복시키도록 했습니다(25).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대로 예수님시대의 사역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 가난한 사람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가난한 자를 도울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5:43-6:4).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서,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이것을 긍휼이라고 부르셨습니다(9:13).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진정한 신앙은 필수적을 자비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쳤습니다(야고보서2:1-1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요한일서3:16-17)” 교회 안에는 부가 아주 너그럽게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물질주의는 여전히 중대한 죄입니다(5:1-6).

 

2. ‘샬롬(שָׁלוֹם)’은 보통 평화혹은 평화와 번영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샬롬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신체적, 관계적, 사회적, 영적-의 총제적 형통을 의미합니다. 즉 원래의 상태, 원래 되어야 할 상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신체는 모든 장기들이 함께 기능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샬롬과 정의를 구현할 의무와 책임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내면의 샬롬을 경험하게 됐다면 그것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사회문제를 지금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다룰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엮는 다리가 돼야 합니다. 창조 세계의 질서회복을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그룹(학교, 교회, 직장 등)이 나의 속한 지역에 어떤 고유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리랑카의 베자민 페르나도(Benjamin Fernando)는 말합니다. “개인 복음과 사회 복음이 분리되어 별개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복음이 있을 뿐이다-구원된 사회 안에 구원된 개인이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이 땅에서의 삶이 한 번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회 문제는 지금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다룰 수 없다.” 이것은 샬롬을 영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난의 이유에 대해서 최소한 세 가지 요소-불의와 억압, 환경적 재앙, 개인적 실패-를 말합니다.

 

갈라디아서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손해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일 우리 이웃의 어려움과 필요들이 우리의 문제나 필요보다 훨씬 크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짐이 가벼워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와 함께 가까이 손해를 감수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의 짐을 우리가 함께 나누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서로 짐을 지라고 할 의무가 결코 없고, 단지 우리가 짐을 나누어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지지 않으면서 과연 어떻게 이웃의 짐을 질 수 있겠습니까?

 

돕는다는 것은 우리가 시간적 여유, 재정, 감정 자원을 가족 사람들을 도와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짐이 될 때에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정의는 진정한 믿음의 지표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의 지표입니다.’ 마음의 진정한 영적 건강의 표지입니다. 나의 이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만한 모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약함, 무관심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공동체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잘 돕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위험하고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행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이웃을 위해 베푼 자비를 우리에게도 있기를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우리에게 늘 임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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