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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10(열왕기하) 이미순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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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ngroch.or.kr/bbs/bbsView/26/6161377

이번주간(10.17~10.22) 성경읽기는
월-열왕기하11~13장 / 화-14~16장 / 수-17~19장  / 목-20~22장 / 금-23~25장 / 토-아모스1~3장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어려움이 많았던 북왕국 ‘이스라엘’과 달리 남왕국 ‘유다’는 내적인 위기를 거의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독립성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앗수르의 위협을 받기를 마찬가지였습니다. 앗수르 봉신 국가로 앗수르 왕을 군주로 모셔야 했습니다. 

 

.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가 앗수르 사람들에게 함락될 때 남왕국 유다를 다스리던 사람은 유다에서 가장 훌륭한 왕들 가운데 하나인 히스기야(B.C 725-697)입니다. 그는 예배에서 이방 요소들을 말끔히 없애버립니다(왕하18:1-8). 그렇지만 히스기야도 반 앗수르 동맹에 가담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이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기원전 701년 수리아 팔레스티나를 정벌하러 옵니다. 산헤립은 유다의 여러 요새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에워쌉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신뢰한 왕이었습니다(왕하18:17-19:37).

 

 

히스기야 다음 왕은 므낫세(B.C 699-643)인데, 므낫세는 앗수르에 충성합니다. 그가 앗수르의 국가 종교의식을 예루살렘 성전에 받아들이고 이 때문에 나중에 유다가 망한 것을 므낫세의 책임으로 돌립니다(왕하24:3-4).

앗수르바니팔이 죽은 기원전 633년 뒤로 앗수르 세력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 요시야에게 좋은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요시아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전 북왕국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여 이를 유다 왕국에 병합하였습니다. 요시야의 꿈은 다윗 왕국의 재건이었습니다. 요시야의 통치 기간에 일어났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율법책의 발견입니다. 이 책을 토대로 하여 요시야는 여호와와 새롭게 언약을 맺고 철저한 ‘종교개혁’을 해냅니다(왕하22-23장).
기원전 609년, 애굽의 바로느고가 북쪽을 목표로 하여 팔레스타나를 지나갈 때 요시야는 당시의 정세를 오판하고 느고와 맞섭니다. 이 작전에서 요시야는 목숨을 잃고(왕하23:38-30), 요시야가 죽음으로써 개혁도 실패로 끝납니다.

유다는 잠시 애굽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가 곧바로 신 바벨론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여호야김 왕(B.C 608-598)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를 배반하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러 옵니다. 여호야김의 후계자 여호야긴은 석 달밖에 왕노릇을 못하고 항복합니다. 이 때 다른 많은 예루살렘 상류층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로잡혀간 사람들 중에는 바벨론의 예언자로 부름 받게 되는 에스겔도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왕가의 친척인(방계 출신) 시드기야를  새 왕으로 세웁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경고했는데도 시드기야가 바벨론에게 저항하고 이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에워쌌다가 기원전 587년에 함락합니다. 이는 유다 왕국과 다윗 후손의 예루살렘 왕권은 끝을 뜻합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었고 아직 남아있던 상류층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습니다. 자진해서 이스라엘 땅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왕하25:2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창조하십니다(겔37:1-14). 사로잡혀 간 유다왕 여호야긴이 옥에서 내놓아 사면된 사실이 그 첫 징조입니다. 다윗왕조의 일원이 다시 유다의 왕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와 있던 사람들에게는 여호야긴이 늘 유다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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