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읽기19(호세아/이사야) | 이미순 | 2022-11-18 | |||
|
|||||
|
샬롬!
이번주간 성경읽기 11.14(월)호세아 13-14장
호세아-4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여러 제단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벧아웬(Bethaven)이라는 낯선 지명을 몇 번 사용합니다(호4:15,5:8,10:5). 호세아가 말하는 벧아웬은 벧엘(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벧엘은 일찍이 아스라엘 민족의 조상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한 장소입니다(창28:16-19). 이후로 벧엘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성소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간직해 왔습니다(삿20:18,삼상10:3,암5:5).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1세는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하는 황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북이스라엘의 많은 우상숭배 제단들을 대표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호세아는 이미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벧엘을 벧아웬(악의 집)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마땅히 이혼을 선언하고 뒤돌아서야 하는데 호세아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불붙듯 일어나는 긍휼로 나타납니다. 호세아11:8-9 “에브라임(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지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르호보암 시대(기원전 931년경~913년경 재위)에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흔히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도 부릅니다. 호11:8절에 아드마와 스보임은 일찍이 하나님이 유황과 불로 진멸한 소돔과 고모라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던 도시들입니다(창10:19,14:2,14:8). 이 두 도시의 죄악 또한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아 함께 멸망당했습니다(신명기29: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이스라엘을 이 같이 다루지 않고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어서 참 다행입니다. 호세아와 결혼한 음란한 여자 고멜이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음란한 여인과 결혼했다고 해서 그 자식들 역시 음란하다고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도 분명 처음부터 음한한 아내, 음한한 자식들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이용하거나 빗겨 가기 시작하면서 잘못된 사랑에 빠지고 배반의 길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벧엘을 벧아웬으로 변절시키고 현대판 바알로 대변되는 돈, 권력, 명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이 고멜과 이스라엘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멜을 포기하지 않은 호세아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지금의 우리도 역시 당신의 아내로 맞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그 사랑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가장 놀라운 신비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사랑하시되 마치 사랑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개개인 모두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