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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읽기21(이사야2) | 이미순 | 2022-1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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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9) 시리아(아람)-에브라임전쟁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사7:8-9)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대에 있었던 두 번의 전쟁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주전 735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람(시리아)과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공격한 사건입니다. 당시 아람은 가나안 주변국 중 가장 강력한 나라였고, 북이스라엘 역시 유다보다 군사적으로 훨씬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이 두 나라는 동맹을 맺어 신흥 앗시리아 제국에 대항하려했고, 남왕국 유다에게도 동맹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유다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유다는 동맹을 맺은 두 나라의 공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를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라 부릅니다. 시리아는 아람을 말하고,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입니다.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을 정벌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에서 이사야는 하나님 한 분만 굳게 믿을 것을 선포했습니다. 아하스 왕과 지도자들에게 전한 이사야의 이 말에는 헬라(희랍)어, 아멘(ἀμήν)이 유래된 히브리어, 아만(ןמא)이 서로 다른 형태로 두 번 등장합니다. 이사야7:9의 ‘(너희가) 굳게 믿다’(타아미누)와 ‘(너희가) 굳게 서다’(테아메누)는 사실 같은 뿌리인 ‘아만’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버리고 외세를 의지하면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되리라는 경고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를 굳게 하는 믿음이 없으면 너희가 스스로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예언 역시 이 전란의 과정 중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라 하리라(사7:14)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과 연결 짓고 있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맥락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이사야의 확신에 찬 메시지는 평강의 왕에 대한 예언(9장)과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희망(11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어리석게도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왕 디글랏빌레셋(=‘불’이라고도 불림)에게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왕하16:7). 앗수르의 입장에서는 좋은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 아하스의 도움 요청으로 디글랏벨레셀은 곧바로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점령하고 왕 르신을 죽였고, 그 백성을 사로 잡아갔습니다(왕하16:9). 또 북이스라엘의 북쪽 지역과 요단동쪽 부분을 빼앗아 앗수르의 영토에 넣어버렸습니다(왕상15:29). 그러나 이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하스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의 힘을 빌어 생명을 유지했으니, 속국의 왕으로서 감사의 표시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는 디글랏빌레셀이 있는 다메섹으로 가서 ‘거기 있는 (이방)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양식을 그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냅니다. 우리야는 왕의 명령대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제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이방의 제단 위에 놓여지게 됩니다. 분명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지만 그가 드리는 제사는 앗수르의 본을 따라 만든 제단에서 드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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