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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읽기22(이사야3) | 이미순 | 2022-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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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세 번째 이야기) 예언자 이사야(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뜻)는 그가 활동한 바로 미루어보면 예루살렘 왕실과 가깝게 지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사야는 시온(사28:16)과 다윗왕조(사9:6-7)가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사건들, 더구나 은밀한 외교적인 일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특히18-19장, 39장 참조). 이사야는 왕족의 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예루살렘을 이끌어가는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736년 또는 739년부터 701년까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앗수르제국은 그 세력을 펼치기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한동안 애굽까지 이르렀습니다. 지중해 동쪽 연안의 다른 여러 작은 나라와 함께 유다도 이 확장정책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처음에는 앗수르의 지배세력(패권)을 인정함으로써 살아남으려 했지만 나중에는 블레셋과 애굽 때문에 반 앗수르 동맹에 가담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스스로 안전을 꾀하는 이 모든 조처를 하나님이 무조건 단연코 거부하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곧 자신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을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사31:4-5)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쓸데없는 동맹정책에 끼어들지 말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가운데 조용히 기다리며 하나님이 행동하시게 맡겨야 합니다(사7:4-9, 28:16, 30:15). 수리아(=아람=시리아)와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이 유다를 억지로 반 앗수르 동맹에 가담시키려고 했다가 벌어진 이른바 수리아-에브라엠 전쟁이 이런 믿음을 시험해 보는 첫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앗수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 사람들이 도와주는 자로만 오지 않으리라는 점을 예견했습니다(사7-8장). 이사야의 활동이 끝날 무렵에는 이와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곧 온 유다는 앗수르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예루살렘은 앗수르 군대에 에워싸인 것입니다. 이제 왕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고, 예루살렘은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습니다(사36-38장). 이사야가 보기로 앗수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뼈아픈 가르침을 주시려고 쓰시는 심판의 도구이지만(사10:5-6), 또한 하나님이 뜻하신 목표를 훨씬 넘어서서 행동하다가(사10:7-15) 하나님이 놓으신 초석인 시온에서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강대국(시28:16, 31:8-9)이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자의 예언자’라고 불립니다. 이사야만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을 잘 선포한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사6장) 이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거룩하심 앞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실패가 더욱더 심각하게 보였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탁을 받아 당시 사회의 폐해(사3:13-15, 5:8-24, 10:1-2)와 계속 품위가 떨어져 속 빈 형식만 남도록 예배가 변질한(사1:10-17) 악한 행실을 공격합니다. * 독일성서공회 해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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