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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23(이사야4) 이미순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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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침공

 

1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이사야31:1-3)

 

산헤립은?

앗수르의 왕으로 사르곤2세의 아들이며 에살핫돈의 아버지입니다(왕하19:36-37). B.C 705-681까지 앗수르를 통치했습니다.

 

남유다에게 닥친 또 한 번의 전란은 주전 701년에 일어난 산헤립의 침공입니다. 당시 히스기야는 고대근동을 처음으로 통일한 대제국 앗수르(아시리아)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사라져버린 옛 이스라엘왕국영토의 일부와 블레셋 도시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하려 했고, 이러한 히스기야의 정치개혁 단행은 당연히 아시리아의 군사적 대응을 야기시켰습니다.

산헤립은 남유다 왕국 전역을 공격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지보다는 외부의 군사적인 힘과 동맹에 의지하여 위지를 벗어나려 했으나, 이사야는 이번에도 외국(=애굽)의 힘을 빌리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을 것을 선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이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히스기야 왕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전쟁에 철저히 대비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예루살렘은 성 안에 수원(水源)이 없어 자체적으로 물을 길러 낼 수 없다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일한 물 공급지는 성 밖에 있는 기혼 샘뿐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곳의 물을 성 안으로 길러다 쓰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전쟁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는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성 밖의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도록 터널을 만들었고, 이 지하터널이 완성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은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에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8:6).

1880년 실로암 못 근처에서 발견된 실로암 석비에는 이 터널의 공사과정이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굴이 뚫린 과정은 아래와 같다. 양편에서 중심부로 향해 파 나가다가 거의 중간 지점에 거의 도달해서 3규빗 쯤 남았을 때, 우리들은 반대쪽에서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굴이 마주 만났을 때, 사람들은 돌을 깎아나갔고, 돌 깎는 도끼와 도끼가 서로 부딪쳤다. 그리고 샘(기혼 샘)으로부터 물은 저수지(실로암)를 향해서 1,200 규빗 거리를 흘러 들어갔다.

 

망치와 끌만으로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암벽공사가 가운데 지점에서 거의 정확하게 만나 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는 신명기 사가가 히스기야 왕의 삶에 대해 마무리 평을 하면서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이 일을 거론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실로암 못)와 수도(=터널)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20:20-21).

 

그렇다면 전쟁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이 전쟁에 대한 앗수르인들의 기록은 니느웨 발굴에서 나온 자료인 산헤립의 프리즘 비문(Prism Inscription)에 등장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기록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산헤립)는 그 자신(=히스기야)을 그의 왕도(王都) 예루살렘 중앙에 새장의 새처럼 가두었다. 나는 공성(攻城 성이나 요새를 공격)보루(堡壘 지켜야 할 대상)를 만들어 그의 성문에서 나오는 이들이 그에게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나의 빛나는 위엄에 대한 두려움은 히스기야를 압도했으며, 그가 그의 왕도 예루살렘을 강화하기 위해 불러들인 우수한 군대는 일을 멈추었다...”

 

이 비문의 내용만 가지고 본다면 앗수르는 대승을 거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산헤립 왕은 이스라엘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유다 왕국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 전쟁에 대한 성서의 진술은 모두 세 군데에 나타나 있습니다(왕하18:13-19:37, 36-37, 대하32:1-23). 신명기 사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공격을 이겨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왕하19:35-36).

 

이렇게 성경는 예루살렘이 히스기야 치하에서 앗수르의 정복과 가능한 파괴로부터 안전하였다고 보도합니다. 역사적으로 남유다왕국은 북이스라엘보다도 약한 나라였지만, 거대한 제국 앗수르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두 번의 전쟁 모두에서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할 것을 외쳤기에 그에게는 믿음의 예언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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