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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이미순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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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히스기야 후손의 외침>

 

스바냐서의 첫 구절에는, 다른 예언자들을 소개할 때와는 달리, 스바냐 한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긴 족보가 열거됩니다. 스바냐는 왕족이었습니다. 그의 족보에는 세 명의 왕을 포함해서 무려 일곱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스바냐의 고조부가 히스기야 왕이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남왕국 유다의 스무 왕 중에서 열세 번째 왕 히스기야(주전 715-687년경)는 요시야와 더불어 신명기 사가에 의해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던(왕하18:5) 전무후무한 좋은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고대 근동을 처음으로 통일한 대제국 앗수르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잃어버린 옛 이스라엘 왕국 영토를 회복하려는 정치개혁을 시도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운동입니다. 이십오 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그의 통치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면서 모든 예배와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나갔습니다.
이를 위해 여호와의 성전을 복구하면서 성결하게 하는가 하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아 번제를 드리고 성전을 다시 공식적으로 봉헌했습니다(대하29장).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유월절 축제도 다시 지켜졌습니다. 원래 유월절 축제는 양을 잡는 것으로 시작하여 칠 일 간의무교절 축제로 이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유다의 온 회중이 즐거운 마음으로 유월절 축제를 일주일 연장하여 지킬 정도로 히스기야의 유월절 갱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대하30:26-27).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허용된 예배(=중앙성소화) 외에 다른 여러 종교적 관행의 축출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상을 깨부수고 성전을 정화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예배하던 장소까지도 파괴함을 의미했습니다. 그 예배가 비록 여호와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당시 유다왕국의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 외에도 각 지방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이 산당들은 우상숭배 내지는 종교적 혼합주의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로 이 산당들을 제거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종교중앙화를 촉진시켰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보관하고 있던 놋뱀까지 없애버렸습니다. 출애굽여정 중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필두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그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어나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게 하고, 그 놋뱀을 긴 장대 끝에 매달게 했고,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이 놋뱀을 쳐다보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민21장). 모세가 직접 만들었던 바로 그 놋뱀이 히스기야시대까지 보존되어 전해왔습니다. 히스기야 당시 그 놋뱀 마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종의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한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셨던 바로 그 놋뱀이 우상화되었을 때, 히스기야는 주저없이 다른 우상들과 함께 영원히 제거해 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어떤 왕들의 개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개혁이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3-5)

 

스바냐가 바로 그 히스기야 왕의 후손임을 알리기 위해 다른 예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긴 족보를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히스기야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에 남왕국 유다의 또 다른 위대한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기 직전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와 아몬으로 인해 유다왕국의 종교는 그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혼합종교로 전락해가고 있었습니다. 스바냐가 활동했던 시대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기 바로 직전으로 유다왕국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 므낫세의 우상숭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아니한 때였던 것입니다.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습1:4-6)

 

이 외침에 여러 히브리어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알’(Baal)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다산종교의 대표적인 신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란종교의 신이었던 바알과 그 배우자 아세라의 종교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아세라 여신상을 세우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왕하21:7).


‘그마림’(Kemarim)은 우상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을 히브리어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말감’(Malcham)은 요단강 건너편에 위치한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신으로 ‘밀곰’(Milcom)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하늘의 일월성신숭배는 특히 앗수르-바벨론제국에서 성행했던 우상숭배로 구약은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스바냐의 조상 히스기야는 이와 같은 종교적 문란 행위들을 척결하고자 했던 왕이었고, 요시야 또한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통해 유다왕국의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주전 6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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